진실의 발자취

[스크랩] 성모마리아의 파티마 예언

코스모칸 2015. 6. 14. 20:35

비행기까지 납치하게 만든, 파티마의 대예언

http://blog.naver.com/dimentu7/220387031437

 

1981년 5월 2일 더블린에서 영국으로 가는 아일랜드 항공기에서 비행기 납치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범인인 로렌스 다우니가 비행기를 납치하며 요구한 사항은 돈도 아니었고, 인명 피해도 아니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로마 교황청은 '파티마 제 3의 예언'을 세상에 공표하라"였다.

 

심지어 로렌스 다우니는 바티칸 소속의 전직 수도사였다.
 
 
파티마 제 3의 예언이 무엇이기에 비행기 납치까지 불사하게 만든 것인가?
포르투갈의 빈민촌인 파티마에 세 목동 아이가 살고 있었다. 각각 10살의 루치아, 7살의 야신타, 9살의 프란치스코가 이들이다.
그런데 1917년 5월 13일, 이들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다.
 
훗날 수녀가 된 루치아는 그녀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한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로 보였고,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듯한 슬픔도 비치고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그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아이들을 선택하고 아이들 앞에 나타났는지는 불명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선(善)을 위해 고행할 것을 부탁한다.
낮 동안 밧줄로 몸을 묶어 그릇된 행동을 삼가고, 더운 날에도 물을 마시지 않으며, 세계의 평화와 죄인들의 참회를 위해 묵주 기도를 드리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러한 고행의 이유를 알려주듯, 그녀는 이들에게 앞으로 인류에게 도래할 참사의 내용을 말해준다.
 
 
이들의 고백은 삽시간에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특히 그들이 주목했던 것은 '인류에게 도래할 참사의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은 끝까지 입을 다문다. 심지어 파티마의 행정관은 이들은 감옥에 가두고 겁을 주면서 예언을 말하라고 윽박지르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지친 행정관은 이들을 풀어주고 만다.
 
이 아이들에게 성모 마리아는 13일마다 나타난다.
3번째로 성모 마리아를 만난 뒤 아이들은 자신들이 거짓말쟁이라고 욕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다음달인 10월 13일 아이들의 말을 확인하려고 신문기자와 인파 7만여 명이 모여든다. 날씨는 시커먼 구름이 온통 뒤덮이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는데 오후 1시경, 갑자기 비가 그치고 먹구름들이 물러갔으며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아래는 당시 신문 기사 보도 내용이다.
 
 
루치아가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치자 하늘에는 여러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고,
태양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광선들을 발산하며 지상을 물들였다.
 
잠시 후,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전진하면서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하였다. 그리고 앞서 내렸던 비에 의해 젖었던 모든 물체가 마치 강한 열기를 받은 듯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서도 아무 이상한 것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 사건으로 파티마의 아이들은 전 유럽에서 엄청난 종교적 명성을 얻지만, 히아친타와 프란체스코는 스페인 독감으로 곧 사망한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수녀로서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역시 수녀가 말한 인류에게 일어날 세 가지 참사 예언이었다.
 
루치아는 일찌기 첫째와 둘째 예언을 말한다.

 

첫째
는 러시아 혁명으로 전 세계가 공산주의에 빠지는 지옥과 같은 세계에 대한 예언이었다고 한다.

 

둘째
는 지옥에 빠질 사람들을 구원한 하나의 전쟁에 대한 예언이었다고 한다.
(이를 2차 세계대전이라고 보는데 2차 세계대전은 공산주의에 맞서는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았지만.)
 
하지만 세번째 예언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한다.
단, 교황 바오 12세가 그녀에게서 예언의 일부를 들었고 이를 전해들은 바오로 6세가 실신했다는 말이 바티칸과 전 유럽에 퍼지면서 이 예언은 인류의 종말과 관련한 예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세간에 떠돈다.
 
가톨릭 내에서 이런 종말론적인 분위기로 가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수도사들이 많았던 데다, 비행기 납치 사건과 밀레니엄 종말론 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2000년 들어 바티칸은 루치아의 예언을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그 예언은 '교황의 암살과 교회의 파멸'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는 만화 <20세기 소년>의 모티프가 된다. 교황 암살 + 안티 크라이스트의 등장)
 
그러나 여전히 루치아의 세 번째 예언의 진짜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허나, (한국 기독교와는 달리) 엄숙한 유럽 가톨릭 분위기 자체가 미신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거부하고 만약 음모론이 사실이라도 '사실 인류 종말이염!'이라는 내용을 공개할리 없기 때문에 파티마의 예언과 관련한 소동은 이대로 일단락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파티마의 예언의 당사자인 루치아 수녀는 2005년 2월 14일, 9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前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신비함으로 점철된 것을 신으로 맹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환영에서 보는 것들은 그 이미지가 각자의 기준과 가능성에 따라서 나타날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예언이라는 것은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묘사와 인식의 양상들로 형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단, 당시 파티마에서 7만명이 본 환영은 너무 직접적이었기 때문에
세계 UFO 단체에서는 현재까지 관련 기록물들을 수집 중이라고 한다.

 

파티마 제 3의 예언

http://cafe.daum.net/waytruelife/63lq/12?q=%C6%C4%C6%BC%B8%B6%C0%C7%20%BF%B9%BE%F0&re=1 

 

1917년 포르투칼 ‘파티마’ 지역에 성모 마리아가 이 마을에 사는 세 어린이 루치

  아(10세), 야신타(7세), 프란시스코(9세)에게 나타나 인류 운명과 관련된 세 가지

  의 예언을 전해 주었다.

 

  성모 마리아는 매월 13일에 계속해서 여섯 번이나 나타났기 때문에, 영롱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약 7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예언을 받은 소녀들 중의 한 명인 루치아는 나중에 수녀가 되었는데, 루치아 수녀는 야신타가 들

준 계시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 가엾어라. 법왕님.

   법왕님이 층층대를 내려오시며 수많은 시체를 넘을 때,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욕설을 내뱉었고,

   법왕님은 손을 이마에 대고 울고 계셨다.

 

 

 

이 계시는, “교황이 시체를 넘는다”는 표현에서 법왕 피우스 10세가 본 것과 동일하다 할 것이다. 사람들은 법왕에게

돌을 던지며 욕하고, 법왕은 울고 있는 이 계시는 종말의 때에, 로마의 교황은 속수무책인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티마의 예언 기록을 본 교황 바오로 6세(재위기간 1963~1978)는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라키 주교의 예언

 

프란체스코 1세와 말라키의 예언

마지막 교황의 시대

말라키의 예언

 아머의 대주교였던 ‘말라키 오모게어’(1094-1148)가 환상을 통해 본 예언을 기록한 글이 그가 죽은 지 450년만인 1590년 바티칸 고문서에서 발견되었다.

 이 예언에는 그가 살아생전에 취임한 교황으로부터(1143년) 이후 역사 속에 등장할 111명의 교황들의 특징을 2-3개의 라틴어로 설명해 놓고 있다.

이 예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11번째 교황 이후에 등장할 숫자가 표시되지 않은 한 교황에 관한 것인데, 말라키는 그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세워질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말라키가  예언한 교황들의 순서로 따지면 현재의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바로 111번째 교황에 해당된다. 그는 111번째 등장할 교황을 ‘올리브의 영광(Gloria Olivae)’라는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2005년 4월 독일 출신인 라칭어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면서 교황의 이름을 베네딕토 16세로 정했는데,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바로 ‘올리브’인 것이다.

 

말라키는 역사 속에 등장할 마지막 교황을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마지막 교황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

 

"In the final Persecution of the Holy Roman Church there will reign Peter the Roman, who will feed his flock among many tribulations, after which the seven-hilled city will be destroyed and the dreadful judge will judge the people."

 

“마지막 박해의 때에 로마 교회는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이 통치하고 있을 것인데, 그는 그의 양무리들을 많은 환난 가운데서 먹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환난들) 후에는 7개의 언덕으로 된 도시(로마)는 파괴될 것이고, 끔찍한 심판이 백성들에게 내려질 것이다.”

 

II.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오는 28일 사임한다”고 교황청 대변인 치로 베네데티니(Ciro Benedettini) 신부가 11일 밝혔다.

 

로이터·BBC·AFP 등 외신들은 이날 베네데티니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긴급뉴스로 이같이 보도했다.

 

대변인이 밝힌 대로 베네딕토 교황이 사임한다면, 이는 1415년 그레고리 12세가 자진 사임한 이후 598년 만에 처음으로 선종(사망)에 앞서 사임한 교황이 된다. 교황은 선종할 때까지 업무를 하는 것이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앞서 2010년 책 ‘세상의 빛: 교황, 교회, 그리고 시대의 징후’에서 자진 사임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베네딕토 교황은 책에서 “(교황에게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더는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낄 경우 사임할 권리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무이기도 하다”라며 “교황의 의무와 잦은 해외 출장에 자주 부담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육체적인 면에서 내가 일(교황 업무)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사원문>> 교황청 “베네딕토 16세 교황, 오는 28일 사임” (종합)

 

III. 1590년 발견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예언의 정확성으로 인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온 말라키의 예언이 다시금 그가 111번째 교황으로 예언한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다는 소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베네딕토 16세가 오는 28일 사임을 하고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다면, 그가 바로 말라키가 예언한 ‘무리들을 환난으로 이끄는 로마 카톨릭의 마지막 교황’인 것이다.   말라키의 예언을 어느 신비가의 정신없는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종말을 알리는 시대적 상황들과 너무 잘 맞아가고 있다.

 

성 말라키는 112번째,   카톨릭 마지막 교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다.

  

   The Final Pope? "In the final persecution of the Holy Roman Church there will reign Peter the Ro

   man, who will feed his flock among many tribulations, after which the seven-hilled city will be de

   stroyed and the dreadful Judge will judge the people.

 

  최후의 교황? 신성 로마 교회의 마지막 박해는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의 치세가 될 것이다.

  그는 많은 시련을 헤쳐 나가야 되는데, 그 후 일곱 언덕의 도시는 파괴되고 무서운 재판관이 사람을 할 것이다.

 

  

 

최후의 교황의 이름은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인데, 그의 치세일 때 종말적 상황이 일어나 로마는 파괴되고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신성 로마교회의 박해”, “마지막 교황의 시련”  등의 구절들, 릭의 교황은 종말의 때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표현하는 어구들이다.

 

법왕 피우스 10세, 말라키 예언과 파티마의 예언의 공통점

 

교황 피우스 10세가 본 것

 

 

교황 비오 10세

 

  법왕 피우스 10세의 본명은 Giuseppe Melchiorre  Sarto. 오스트리아 제국 베네치아 출신으로 1903년 교황으로 출되어 1914년까지 재직했다.법왕 피우스 10세는 프란시스코 수도회 총회를 응대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실신상태에 빠졌는데, 얼마 후 의식을 복하자 공포에 질린 채 이렇게 고백다고 한다.  <법왕 피우스 10세...>

 

  

  오오, 얼마나 무서운 광경인가.

  나 자신일수도, 나의 후계자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로마 법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바티칸을 떠날 때에 ‘사제들의 시체를 밟아 넘으며’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종말의 때에 로마교황은 사제들의 시체밟으며 바티칸을 떠나야 한다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로마 교황은 구원을 위한 아무 역할도 못 하고. 그런데 법왕 피우스 10세가 본 것은, 파티마 제3의 예언이나 성 말라키의 예언과 닮아 이채롭다.

 

 

파티마의 성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D%8B%B0%EB%A7%88%EC%9D%98_%EC%84%B1%EB%AA%A8

 

1917년 당시 루치아(가운데)와 그녀의 사촌들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파티마의 성모

(포르투갈어: Nossa Senhora de Fátima)는 포르투갈산타렝 현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나타났다는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칭호이다.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나타났으며, 그녀가 처음 나타난 5월 13일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세 명의 아이는 루치아 도스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토, 히야친타 마르토이다.

 

역사

 

《일루스트라사오 포르투게사》의 1917년 10월 29일자의 사진 사본. 성모 마리아가 파티마에 발현한 동안 일어난 태양의 기적을 본 수많은 군중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17년 5월 13일,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 파티마의 한 목초지에서 양치기하며 사는 열살의 루치아, 일곱 살의 히아친타, 아홉 살의 프란치스코 등 세 명의 어린이는 코바 다 이리아에서 함께 작은 돌담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이 내려치면서 아이들 앞에 있는 작은 떡갈나무 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루치아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성모의 모습에 대해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그 경계 부분은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며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빛으로 가득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듯한 슬픔도 배어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그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라고 설명하였다.

루치아의 진술에 따르면, 성모는 세 아이에게 일명 ‘파티마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비밀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낮 동안만 고통을 가져오는 굵은 밧줄을 허리 맨살에 단단히 묶고 다녔으며, 더운 날에 물을 마시지 않았으며, 그 밖에도 고행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였다. 루치아의 말에 따르면,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묵주 기도를 자주 바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새 환시와 기적에 대한 소문이 알려지게 되면서 수천 명의 사람이 몇 달 동안 계속 떼를 지어 파티마와 알주스트렐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1917년 8월 13일, 이 사건을 포르투갈을 분열시키려는 정치적 술책이라고 믿은 지방 행정관은 아이들이 코다 다 이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체포하여 근처에 있는 오우렘에 감금하였다. 지방 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아이들은 입소자들을 위로하며 친하게 지냈으며, 나중에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 함께 무릎을 꿇고 묵주 기도를 바쳤다. 행정관은 성모 마리아가 일러준 비밀들의 내용을 실토하라면서 아이들을 심문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비밀들을 알려주지 않을 시 끓는 기름 가마 속에 한 명씩 산 채로 집어넣겠다는 협박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오히려 저항하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투옥당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7년 8월 19일, 성모는 발리뇨스에 있는 목초지에서 어린이들에게 다시 발현하여 매달 13일에 코다 바 이리아에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의 기적

파티마에서의 세 번째 발현인 1917년 7월 13일성모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발현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이 믿도록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 보이겠노라고 약속하였다. 그 말대로 다음 달인 10월 13일에 ‘태양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루치아성모 마리아의 말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자, 신문기자와 사진기자까지 포함해서 대략 70,000명의 사람이 코바 다 이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약속한 날짜인 10월 13일이 되자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고 곧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다. 오후 1시경이 되자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들이 갑자기 물러갔으며, 비도 그쳤다. 그리고 태양이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처럼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루치아는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쳤다. 루치아가 태양을 응시하는 동안, 하늘에는 여러 성인이 나타났고, 태양은 불 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광선들을 발산하며 지상을 물들였다. 잠시 후,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지그재그 모양으로 전진하면서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모두 목격하였다. 그리고 앞서 내렸던 비에 의해 젖었던 모든 물체가 마치 강한 열기를 받은 듯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친 정부적·반 교회적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오 세쿨로》(O Século)의 칼럼니스트 알베리노 드 알메이다는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현상에 대해 “엄청난 인파가 구름 속에서 삐져나와 하늘 한가운데에 있는 태양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모두 모자를 벗고 있던 군중의 놀란 시야 앞에서 태양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난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이 춤을 추었던 것이다.”라고 보도하였다.

리스본의 매일 일간지 《오 디아》(O Dia)는 1917년 10월 17일자에서 “마치 태양에 투명한 베일을 씌운 것처럼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우중충한 회색으로 빛나는 은반 모양이 되었고 서서히 빛이 퍼져서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회색빛 천으로 덮은 듯한 은빛이 나는 태양이 물러나며 구름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며 주춤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통하여 빛나는 것처럼 빛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커다란 회전바퀴 축에서 퍼져 나가듯이 빛이 퍼져 나갔다. 서서히 푸른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노란색 점들이 하얀색 면사포와 검은색 치마로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빛은 낮은 곳에 있는 떡갈나무와 바위들, 언덕까지도 한없이 물들였다. 모든 사람은 기대했던 기적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흐느꼈으며 모자를 벗고 기도하였다. 몇 초간의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살아온 보람을 충분히 느꼈다.”라고 보도하였다.

이날 파티마와 인근 지역 외에는 어디에서도 태양의 이상 현상을 목격하지 못했으며, 천문학자들도 태양 관측에서 별다른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시인 알폰소 로페스 비에이라와 학교 교사 델피나 로페스와 학생들의 당시 목격담에 따르면, 태양의 기적 현상은 최고 40km 떨어진 곳에서도 목격되었다고 한다.

모든 목격자들이 이런 '춤추는 태양'현상을 목격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태양의 광채 색깔만 봤다고 하며, 천주교 신자들 중 어떤 이들은 전혀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

 

첫 번째와 두 번째 비밀

루치아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성모 마리아가 가르쳐 준 첫 번째 비밀은 지옥에 대한 환시였다고 설명하며, 당시에 목격한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성모님께서 손을 펼치시자, 그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땅속으로 뚫고 들어갔습니다. 뒤이어 저희는 그 안에서 거대한 불바다를 보았습니다. 그 불 가운데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검은색 또는 청동색의 숯등걸과 같은 사람 모양을 한 영혼들과 악마들이 화염과 연기 속에서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화재 때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과 사방에서 불똥이 튀는 구름 같은 연기에 싸여 체중도 균형도 없이 실망과 통곡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실로 그 광경은 저희를 공포로 전율케 하였습니다. 악마들의 모습도 서로 구별할 수 있었는데, 불타오르는 투명한 석탄과 같이 흉측스러운 이상한 동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너무도 겁에 질려 그들의 구원을 애원하는 눈초리로 성모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환시는 잠깐만 계속되었습니다. 저희는 첫 번째 발현 때에 저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해 주심으로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켜 주신 자애로우신 하늘의 어머니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희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밀은 지옥으로부터 영혼들을 구해내고, 세계를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시키는 방법에 관한 마리아의 지시를 담고 있다:

“너희는 불쌍한 죄인들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내 티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하신다.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실천하면 많은 영혼이 구원될 것이요,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다. 그리고 전쟁도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다면, 교황 비오 11세 때에 또 다른 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원인 모를 빛에 의해 밤이 밝혀지거든, 하느님께서 전쟁과 기아 그리고 교회교황에 대한 박해로써 세상의 모든 죄악을 벌하시려는 표지로 알아라. 이 재앙을 막고자, 러시아를 내 성심에 봉헌하고 매달 첫 토요일마다 보속의 영성체를 실천하라고 부탁하러 다시 오겠다. 내 요청이 채워지면 러시아는 회개하고 평화가 올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는 자기 오류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전쟁을 유발하며 교회에 박해를 가할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순교를 당하고 교황은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이며, 여러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교황은 나에게 러시아를 봉헌할 것이고,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며, 세상에 평화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는 언제나 신앙이 보존될 것이다.”

 

세 어린이의 죽음

루치아는 1925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폰테베드라에 있는 도로테아 수녀원에 들어간 후, 성모 마리아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 그녀는 성모 마리아로부터 첫 토요일 신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루치아의 보고에 따르면, 아기 예수가 성모 마리아와 같이 발현하여 성모의 요청을 반복해서 말했다고 한다.

1928년에 루치아는 갈리시아의 마을 투이에 있는 또 다른 수녀원으로 이적하였다. 1929년,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티 없는 성심러시아를 봉헌하라는 요청을 되풀이했다고 전하였다.

루치아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개인적으로 발현한 마리아를 주기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발현은 1931년 갈리시아의 리안호에서의 발현이었다. 그곳에서 루치아 수녀는 발현한 예수를 만났으며, 두 기도문과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1947년, 루치아 수녀는 도로테아 수녀원을 거쳐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2005년 2월 13일, 루치아는 향년 97살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루치아가 죽은 후에 바티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당시 신앙교리성의 장관)은 그녀의 독방을 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루치아의 두 사촌, 프란치스코(1908-1919)와 히야친타(1910-1920) 남매는 1919년에 크게 유행하였던 스페인 독감에 희생되었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1989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로 공식 선언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5월 13일에 두 사람을 시복하였다. 히야친타는 이제까지 있던 박해받지 않고서 복녀품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1941년에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가 1917년 6월 13일에 두 번째로 발현하였을 때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이른 죽음을 예언했다고 주장하였다. 올림피아 마르토(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어머니)의 증언을 포함한 일부 이야기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가 전한 이 소식은 비밀로 유지하지 않아 모두가 알고 있었으며, 두 어린이는 병실에 입원하자 자신들의 죽음을 예측하며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1941년 보고에 따르면,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포함한 세 명의 발현 목격자가 죽었을 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성모는 그녀에게 “그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곧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는 좀 더 오래 여기 머물러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알려지고 사랑받도록 너를 사용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세상에 내 티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세우기를 원하고 계신다.”라고 대답하였다.

시성을 위한 조사의 목적으로 1949년1951년에 무덤을 발굴했을 당시, 히야친타의 유해는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반면에,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부패하였다.

2005년 2월 13일에는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루치아 수녀도 97살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파티마의 성모상

러시아의 봉헌

루치아의 말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러시아를 자신의 티 없이 깨끗한 성심에 봉헌하면 러시아가 전향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1952년 7월 7일 교황 비오 12세교황 교서 《Sacro Vergente》를 통해 개인적으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러시아를 봉헌하겠노라고 밝혔다.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몇 년 전 우리가 온 인류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였듯이, 오늘 우리는 특별히 모든 러시아 사람을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여 맡기겠습니다.

1952년에 교황은 성모 마리아가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러시아인들에게 상기시켰다. “지옥의 문은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는 곳에 그 세력을 결코 뻗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착한 어머니이시자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며, 성모님께 보호를 요청한 사람이 그분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토대로, 본인은 모든 러시아 사람을 성모님께 바치겠습니다. 성모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류와 무신론은 성모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은총으로 극복될 것입니다.”

교황 비오 12세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두 파티마의 성모와 특별한 관계였다. 1917년 5월 13일 파첼리는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시스티나 경당에서 대주교로 승진하였는데, 바로 그날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가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처음으로 발현하였다. 나중에 비오 12세로 등극한 파첼리는 파티마의 성모를 기념하는 축일 날짜인 1958년 11월 13일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묻혔다. 파티마의 성모 축일인 1981년 5월 13일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파티마의 성모가 교황의 목숨을 구하도록 관여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교황 자신이 “한 손은 총을 쏘고, 또 다른 한 손은 총알을 비켜가게 했다.”라고 직접 언급함으로써 많은 신자가 믿고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많은 주교와 함께 다시 한번 온 인류와 모든 나라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였다. 이러한 장엄하고 보편적인 봉헌 행위를 본 루치아 수녀는 “그렇습니다. 그것은 1984년 3월 25일에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라며 하늘나라가 1984년 봉헌을 받아들였다고 확인하였다. 이날 이후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봉헌식 후 1년이 지난 1985년에 소련 서기장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건강이 나빠져 사망하고, 이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새 서기장이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언론과 종교의 자유를 위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은 결국 공산주의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 폴란드에 반(反)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민주 정권이 수립되었다. 뒤이어 많은 공산주의 나라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향하였으며, 1989년 11월 9일에는 독일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해 12월 고르바초프가 바티칸을 공식 방문하여 교황과의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으며, 1990년 소련은 바티칸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결국, 1991년소련이 붕괴하면서 동유럽은 마침내 공산주의 지배에서 해방됨으로써 파티마의 메시지가 이루어졌다.

2008년소련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하는 미래를 주제로 한 회의가 열렸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벨로루시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민스크에 모여 루르드의 성모 발현 15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러시아를 위해 노력한 성모 마리아를 크게 존경하였다. 신심 깊은 신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러시아를 위해 파티마의 성모에게 바친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는 증표로 인식되고 있다.

 

세 번째 비밀

세 번째 비밀은 교황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에 대한 환시로, 레이리아의 주교에 의해 번역되어 낭독되었다:

저희는 성모님 왼편 조금 위쪽에서 왼손에 불칼을 든 천사를 보았습니다. 번득이는 불칼은 이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불꽃을 내뿜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오른손으로 천사를 향하여 광채를 방출하시자 그 불꽃은 사그라졌습니다. 천사는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참회하라, 참회하라, 참회하라!” 그러고 나서, 저희는 무한한 빛이신 하느님 안에서 사람들이 거울 앞을 지나칠 때 비치는 모습과 비슷한 어떤 것, 하얀 옷을 입으신 주교님 한 분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그분이 교황 성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가파른 산을 오르시는 다른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남녀 수도자들도 보았는데, 산꼭대기에는 껍질만 남은 코르크나무처럼 투박한 몸통의 큰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그 산에 오르시기 전에 거의 폐허가 된 큰 도시를 지나가셨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절뚝거리시는 발걸음으로 몸을 반쯤 떠시면서 고통과 슬픔에 짓눌리신 채, 도중에 널려 있는 시신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신 교황 성하께서는 그 큰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으신 채, 그분을 겨냥하여 총과 활을 쏘는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다른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남녀 수도자들과 신분과 지위가 다른 많은 평신도도 하나하나 그렇게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양팔 아래에서는 두 천사가 손에 수정 성수반을 들고 순교자들의 피를 받아 그것을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들에게 뿌렸습니다.

 

세 번째 비밀 해석

 

세 아이에게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형상

세 번째 비밀은 1917년 루치아에 의해 문서로 작성돼 밀봉된 다음 바로 교황청에 보내져 83년 동안 오직 교황만이 열람하도록 허용된 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1960년 후 루치아는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을 대중에 공개해줄 것을 바티칸에 요청했지만 2000년 전까지 발표가 보류되었다. 의전 사제 바르사스와 추기경 오타비아니를 포함한 일부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루치아는 그들에게 “1960년에는 그 메시지가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1960년 안에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어떠한 발표 없이 1960년이 지나가자, 그 비밀의 내용에 대해 여러 억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찾아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왔던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공개했다.

 

파티마에서 요한 바오로 교황과 루치아 수녀가 10여 분간 단독 면담한 이후 거행된 미사 뒤에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50만 명의 군중 앞에서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한 메시지는 신앙교리성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대주교의 서언, 루치아 수녀가 1941년 8월 31일 레이리아-파티마의 주교에게 보낸 파티마 첫 번째와 두 번째 비밀 부분, 루치아 수녀가 1944년 1월 3일 작성한 세 번째 비밀 부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루치아 수녀에게 보낸 2000년 4월 19일 서한, 루치아 수녀가 2000년 4월 27일 베르토네 대주교와 레이리아-파티마 교구장 주교와 나눈 대화 내용, 교황청 국무성성 장관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2000년 5월 13일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식에서 한 연설 그리고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신학적 해석으로 구성돼 있다.

 

소다노 추기경은 세 번째 비밀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 기도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 환시는 순교자들의 시신 사이로 십자가를 향해 걷다가 총탄에 쓰러지는 하얀 옷차림의 주교 모습이었다.”라면서, “교황 성하께서 지난 1981년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날짜인 5월 13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으신 다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신 것은 성모님 덕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터키인 저격수 아그자로부터 불과 3m 거리에서 저격당했으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총격을 받은 직후 병원 침상에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이 담긴 봉투를 가져오게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즉시 티 없이 깨끗한 성모 성심에 온 세상을 봉헌하기로 마음먹고, 직접 ‘의탁 기도문’이라 이름 붙인 기도문을 작성하였다. 또한, 그는 저격 사건이 있은 바로 다음해인 1982년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파티마로 순례를 떠났다.

 

베르토네 대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마지막 비밀을 공개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 “이 시대가 권력과 죄악을 향한 인간의 비극적 욕망으로 뒤덮여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예수님과 교회의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가 충만한 역사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라칭거 추기경의 설명으로는, 파티마 세 번째 비밀을 해석하는 열쇠가 바로 천사가 세 번 거듭해서 크게 외친 말, 곧 “참회하라, 참회하라, 참회하라!”에 있다고 밝혔다.

성모 마리아의 왼편에 불칼을 지닌 천사는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며 불을 꺼버린 성모 마리아의 광채는 참회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한다. 라칭거 추기경은 가파른 산, 폐허가 된 거대한 도시 그리고 커다랗고 투박한 십자가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산과 도시는 인간 역사의 무대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정상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창조성을 발휘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업적을 파괴하기도 한다. 십자가는 파괴를 구원으로 바꾼다. 그것은 역사의 고통을 의미하지만, 역사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환시에서 하얀 옷을 입은 주교, 곧 교황의 역할은 특별하다. 교황이 거의 폐허가 된 도시에서 고통과 슬픔에 싸여 다른 주교들,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다른 여러 신분의 신자들 앞에 서서 시체들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은 교회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폭력과 파괴와 박해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지난 한 세기의 역사가 이 모습 안에 압축되어 있다. 루치아 수녀의 글에는 교황이 산의 정상에 다다랐을 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해당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모님의 손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불변의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앙과 기도야말로 역사를 바꾸는 힘이며 기도는 총알보다 강하고 신앙은 군대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십자가의 두 팔 아래서 순교자들의 피를 모아 하느님의 길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에게 뿌리는 천사들의 모습은 피와 눈물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보여 준다. 이처럼 파티마 세 번째 비밀의 결론은 희망이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 징표가 되는 것은 고통받는 교회, 순교자들의 교회이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겪는 고통에서 정화와 쇄신의 힘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비밀의 의미와 성모 마리아가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개별 사건들이 묘사되는 한, 그것은 과거에 속한다. 세계의 종말이라든지 역사의 미래에 대한 놀랄 만한 묵시록적 계시를 기대하였던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 전체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축소될 수 없는 것처럼, 파티마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하게 하지는 않는다.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가 세 번째 비밀의 원문을 성찰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미 분명하였다. 그것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길로서 기도를 권장하고 또한 참회와 회개를 촉구한 것이다.

또 마리아의 순종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께서 오셔서 역사가 바뀌었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깨끗한 마음으로 악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티마의 기도와 보속

몇몇 가톨릭 신자들은 파티마의 성모에게 바탕을 둔 기도를 바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기도는 성체의 기도성삼위성체를 모독하는 모욕적 언동을 없애달라고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도는 한 천사가 성체와 성혈을 가지고 와서 그 앞에 엎드려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어린이와 함께 바쳤기 때문에 천사의 기도라고도 불린다.

파티마에서는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무리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천사를 기념하는 날에 축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그 결과 그를 평화의 천사라고 부르고 있다.

 

파티마의 세 번째 예언.

http://blog.daum.net/zaumm/1973  국제결혼정보센타

1917년, 포르투갈의 세 어린이에게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성모는 태양보다 환하게 빛났습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파티마 마을에 나타나신 성모님과 세 아이들. (영화포스터) 

 

세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에 주목!

 

왼쪽부터 하신타, 루치아, 프란치스코.

 

성모 마리아는 미래의 세 가지 비밀을 알려줬습니다. 두 가지 비밀은 사실로 나타났지만 과연 세 번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천사가 나타나 세상을 향해 오른 손을 치켜들고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고 외칩니다.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1917년 5월 13일, 전 세계가 1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에 포르투갈의 조용한 시골마을 파티마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세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하늘에 나타난 그 여인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성모라 불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하늘에서 온 사람.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


성모는 태양보다 환하게 빛났습니다. 목에는 지구 형상의 둥근 물체를 걸고 있었고 손에는 장미를 들고 계셨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아이들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놀란 아이들에게 매일 로사리오 기도를 바칠 것과 다른 이들도 똑 같이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인류가 기도를 바치고 회개하면 큰 전쟁을 끝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죠.


성모의 메시지는 자녀에게 말하는 어머니처럼 다정했습니다. 내 아들 예수에게로 오면 천국의 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죠.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성모님이 발현한 모습. 성모발현 성당 안에 모셔진 파티마의 성모상. 왕관을 따로 씌웠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수 세기 동안 보고돼 왔습니다. 그러나 성모를 보았다는 주장은 항상 신비에 싸여 있죠.


발현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어요. 하나는 죽은 영혼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실체라는 설이지만 회의적인 시각에서 보면 상상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기 거의 400년 전, 멕시코 과탈루페에도 성모 마리아가 자주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1531년, 마리아는 51살 된 농부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 주교에게 자신을 위한 성당을 짓도록 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농부는 주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테니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애걸했지만 마리아는 ‘나는 네 어머니다. 내가 모두 돌봐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디에고의 옷자락에 새겨진 멕시코 과탈루페의 성모.


후안 디에고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12월 한 겨울에 활짝 핀 장미를 한 아름 안고는 주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디에고가 옷자락을 펼치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마리아의 형상이 그의 옷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성모님의 유일한 모습입니다. 마치 천조각에 그린듯한 모습이죠. 그 형상은 과탈루페에 보관돼 있는데 조금도 낡지 않았어요.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과탈루페의 성모 형상은 기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물감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사진을 붙여놓은 걸 볼 수 있어요. 그게 기적이라고 말하는 건 어이가 없습니다.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1858년 3월 25일, 프랑스의 루르드 14살 소녀 베르나데뜨 수비르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습니다. 동굴 뒤에 있는 진흙물을 마시라는 성모의 말에 소녀는 난감했습니다.


이상한 명령이라 생각됐지만 그 소녀는 성모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모두들 소녀를 조롱하며 멀리했죠. 그런데 머지않아 갖가지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성녀 벨라뎃다 수비루. (본명: Marie-Bernarde Soubirous) 1844년 1월 7일 프랑스 루르드에서 나고 1879년 4월 16일 느베르에서 벨라뎃다는 지병이 악화되어 35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성모 발현 당시 동굴 모습. 앞쪽에는 개울물이 흐른다.


현재의 동굴 모습.


성녀 벨라뎃다. 그녀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1909년 9월에 시성을 위한 절차로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후 두 번에 걸친 발굴이 있었는데 3번째 발굴에선 46년에 걸친 보관 동안 빛 차단과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밀랍을 얼굴과 손에 얇게 입혀, 6월에는 크리스탈 성골함에 보존하였다.




그 후로 루르드는 기적의 치유를 바라는 이들의 성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자연적 사건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많은 이들은 회의적입니다.


안됐지만 루르드를 참배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왼쪽부터 차례로 루치아, 프란치스코, 하신타. 아이들이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주목!


그러나 파티마의 어린이들은 진심으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고 믿었습니다. 그 중 10살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말재주가 아주 좋은 아이였습니다.


루치아는 아이들 중에서 대장 격이었죠. 실제로 성모와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그 루치아였습니다. 카리스마가 있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루치아는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길 좋아했어요.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어른들께 거짓말을 한다고 매 맞을까 겁이 난 루치아는 동생들에게 5월 13일에 성모 발현에 대해 입을 다물라고 말합니다. 장난끼 많은 프란치스코는 사촌누나의 말에 곧 순종하지만 일곱 살 난 누이동생 하신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결국 하신타는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성모 발현 소식은 온 마을로 퍼져 나갑니다. 그 후 매월 13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아이들을 따라 코바로 향했죠.


성모께서는 정오에 출현하셨어요. 그리고 매 번 나타나실 때마다 두 팔을 크게 벌리셨는데 손바닥에서 빛이 나와서 아이들에게 쏟아지곤 했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이 조용한 마을의 기적은 매월 13일 정확히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파티마 밖에서는 1차 대전이 한창이었죠. 결국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로 파시스트 집권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독재정권은 수녀와 신부들을 잡아들이고 성당 문에 못질을 하여 폐쇄해버립니다. 이러한 무신론적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파티마는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로 떠오릅니다. 그러던 중 6월 13일, 성모는 아이들에게 끔찍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모든 고통을 견딜 준비가 돼 있느냐? 주님께서는 죄지은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너희를 택하셨다. 너희는 고통 받을 것이나 하느님의 자비가 너희를 어루만져 줄 것이다.

(성모 마리아)


놀란 아이들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받고 희생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겁 많은 아신타가 훌쩍이는 동안 마리아는 장차 전 세계를 경악케 할 세 가지 예언을 말해주죠. 예언을 듣는 동안 한 때 철부지에 불과했던 이 아이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수다쟁이 아신타는 조용하고 내성적으로 변하며, 프란치스코는 몇 시간씩 기도만 하게 되고, 루치아는 갑자기 시름에 잠긴 아가씨가 돼죠. 세 아이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고통받을지 고민합니다.


그들은 거친 밧줄을 발견하고는 세 동강을 내서 각자의 허리를 동여맵니다. 가장 어린 하신타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자 루치아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리지만 하신타는 기꺼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돼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이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성모 마리아의 명령 때문에 아이들은 전에 없이 서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이들은 첫 번째 비밀, 끔찍한 지옥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지옥 불에 떨어진 인간이 불타는 모습.


성모님은 첫 번째 비밀을 아이들에게 말해주면서 두 손을 벌리자 땅이 갈라졌습니다. 그 밑으로 불의 바다가 올라오고 불에 탄 인간과 혐오스러운 모습의 짐승들이 보였죠. 성모께서는 지옥을 보여준 뒤 아이들을 달래면서 너희들은 천국으로 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루치아, 프란치스코, 하신타는 여러 세기동안 전해져 내려온 자비로운 성모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서로를 위로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멀게 느껴지는 반면 성모는 우리와 가깝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은 두려워하지만 성모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탁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지요.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그러나 머지않아 전 세계가 이 아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10살 난 루치아를 주목하게 됩니다. 과연 파티마의 나머지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주신 미래의 예언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었을까요?


1917년 5월 13일, 세 어린이 앞에 성모 마리아가 출현했다는 소식은 포르투갈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나갑니다. 곧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새로운 파시스트 정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매월 파티마로 몰려들었죠. 같은 해 8월 13일 아침, 오리엠시 시장은 날로 높아가는 파티마에 대한 관심을 돌려보고자 루치아와 프란치스코, 하신타 세 어린이를 납치해 감옥에 가둡니다.


그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인하길 바랬지만 아이들은 절대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사탕도 주고 돈도 주면서 달래도 말을 듣지 않자 끓는 기름에 넣겠다고 협박했지만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은 과탈루페나 루르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 앞에 성모가 발현했다는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8월 15일, 아이들은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당국에서는 이 어린이들 중에서도 루치아를 주도자로 지목하고 심지어 루치아의 가족마저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로서 행복했던 루치아의 유년시절은 끝나고 맙니다.


루치아는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남을 이끄는 통솔력도 있었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회의론자들은 루치아의 주장이 사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의 성장 배경을 면밀히 조사해본 결과 루치아는 환상에 빠지기 쉬운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천사와 친구라고 말하는가 하면 초자연적인 신비한 경험을 두둔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어요.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가 되었던 셈이지요.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심지어 루치아의 어머니 마리아 도스 산토스 조차 딸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고 심한 매질을 합니다.


이 거짓말쟁이 루치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람을 속이다니. 늙어서 이게 무슨 꼴이람!

(루치아의 어머니 마리아 도스 산토스)


인간의 정신은 어떤 것이 가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헐리우드의 일류 배우들이 대표적인 예죠. 배우들은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게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로 착각할 정도로 깊이 몰입하죠.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가톨릭 신부를 포함한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아이들이 악마와 교류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순례자들이 작은 파티마 마을에 계속해서 몰려들 경우 무신론적인 포르투갈 정부가 이것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두려워했죠. 절망에 빠진 아이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들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합니다.


매월 나를 찾아오너라. 10월에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주겠다. (발현한 성모 마리아)


1917년 10월 13일, 정부의 위협과 폭탄테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7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약속된 기적을 보기 위해 루치아를 따라 코바로 몰려듭니다.


때마침 전날부터 비가 와서 바닥은 온통 진흙탕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와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도 소용없이 흠뻑 젖었습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순례자들은 뭔가 특별한 기적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한참 고조됐을 때 루치아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자 모두가 하늘을 쳐다봤어요.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태양의 모습.


태양은 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여러 가지 색으로 변했습니다.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 흰색 그리고는 점점 더 커지면서 땅에 가깝게 내려오기 시작했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그날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을 카메라로 촬영해두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그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순례자들은 불덩어리 태양이 지상에 가깝게 내려오자 두려움에 떨며 진흙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었습니다.


태양은 다시 본래의 모습과 위치로 돌아갔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죠. 그런데 온종일 진흙탕 속에서 잔뜩 더러워졌던 옷이 티 하나 없이 말끔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양치기 어린이들의 말은 사실로 입증됐고 회의론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 하늘에서 춤추는 태양을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것을 기적이라고 믿는 건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환일이라는 천문학적인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조건이 일시적으로 형성되면서 태양빛을 반사하고 굴절시키는 제2의 태양이 나타나는 일종의 기상학적 현상이죠.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1917년 10월 29일자 Ilustracao Portugueza 포르투갈 신문 기사에는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들판3만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한다.


태양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과 가족, 친지로부터의 의심은 계속됩니다. 머지않아 대전쟁은 끝나지만 프란치스코와 하신타는 평화를 체험해보지도 못한 채 1920년 둘 다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죠. 루치아의 부모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스페인 수녀원으로 루치아를 보내 버립니다.


이제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루치아뿐. 성모의 발현을 함께 목격한 사촌동생들을 잃은 슬픔에 잠기지만 성모 마리아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성모는 루치아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내 티 없는 마음이 네 피난처이자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하죠.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불길한 파티마의 두 번째 비밀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린 루치아에게는 성모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너는 죄지은 불쌍한 영혼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많은 영혼들은 구원받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용서를 청하지 않으면 더 큰 전쟁이 일어나 러시아가 전 세계로 마수를 뻗쳐 전쟁을 일으키고 교회를 파괴하며 여러 나라를 붕괴시킬 것이다.

(발현한 성모 마리아)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의 명을 거역할 경우 세상의 종말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당시 Mosin-Nagant 소총으로 무장한 제정 러시아군.


파티마의 성모 발현은 1917년, 즉 소비에트가 러시아를 접수하던 바로 그 해에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특히 종교계는 소위 볼셰비키 혁명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두려워했죠.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종교를 박해하고 무신론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연설하고 있는 레닌. 1917년 10월 17일,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당이 무장 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파티마의 예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예언하는듯 했습니다. 또한 성모가 말하는 러시아는 스탈린의 통치와 흡사한 점이 많죠. 1917년, 성모가 전해준 두 번째 비밀에서 이런 일이 정확히 예언되었다면 과연 세 번째 비밀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요?


1917년, 성모의 발현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그 후 8년을 수녀원에서 조용히 지냅니다. 그러나 1929년, 그녀는 고해성사 중 파티마의 처음 두 가지 비밀을 베르나르도 곤살베스 신부에게 털어놓습니다. 첫 번째 비밀은 지옥에서 불타는 죄지은 영혼이었습니다. 두 번째 비밀, 즉 또 다른 큰 전쟁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많은 나라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예언은 정확히 10년 뒤 현실로 드러났죠.


1941년, 처음 두 가지 비밀이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을 통해 발간됩니다. 그러나 루치아의 예언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발간됐는지 후에 발간됐는지를 놓고 심각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파티마의 두 번째 비밀은 제2차 대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루치아는 그것을 1941년 회고록에 썼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예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애써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럴듯하게 들릴 뿐이죠.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 내용을 믿습니다. 1929년, 교황 비오 11세에게 파티마의 비밀을 알려줬다는 게 그 이유였죠. 1930년, 로마 교황청은 1917년에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증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숨겨진 세 번째 비밀은 1944년 3월, 루치아 수녀가 죽을병을 앓으면서 영영 묻혀버릴 위기에 처합니다. 루치아 수녀는 병세가 회복되자 세 번째 비밀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녀의 기록은 바티칸 깊숙한 곳에 보관돼 있다가 56년 뒤 전혀 다른 인물에 의해 공표됐습니다.


1920년 폴란드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는 사상 최초의 폴라드인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이 될 운명을 안고 있었습니다. 8살 되던 해, 어머니를 잃으면서 행복한 인연은 막을 내리고, 상심한 카롤은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년 시절 모습.

 

A school portrait showing Karol Jozef Wojtyla (top left), the future Pope John Paul II, as a schoolboy, circa 1930.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맨 왼쪽 위가 미래의 교황.

 

Polish priest Karol Wojtyla, who became Pope John Paul II in 1978. He was the first non-Italian Pope since Adrian VI died in 1523.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48


그는 청년기를 거치면서 끔찍한 전쟁을 겪게 됩니다. 바로 파티마의 두 번째 비밀이었죠. 1917년 7월 13일, 성모께서는 두 번째 비밀이 나타나기 전에 큰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밤중에 하늘이 밝아오면 하느님이 세상을 벌주려는 신호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1938년 1월 25일, 그 징조가 나타납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수녀원 창문을 통해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본 루치아 수녀는 또 다른 큰 전쟁이 임박했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날 유럽 하늘을 뒤덮은 빛은 핵폭발에서나 봄직한 그런 붉은 빛이었어요.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실제로 그날 밤, 모든 대서양 횡단 케이블 통신이 몇 시간 동안 두절되고, 여러 대륙에서 하늘이 이상한 빛으로 타오르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이상한 빛이 하늘을 밝히다. - 타임즈 -

유럽 밤하늘 타오르다. - 뉴욕 타임즈 -


다음날 뉴욕 타임즈는 이 사실을 대서특필합니다. 그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죠. 과학자들은 그것이 오로라 바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그것이 1917년 성모 마리아가 말한 하늘의 징조이건 아니건 간에 곧 2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1939년 9월, 전투기들이 폴란드의 고도 클라코프에 맹폭격을 퍼부으면서 나찌 점령의 신호탄이 오릅니다.



2차 세계대전.



2차 대전 나찌의 독일군.


폴란드인들이 무식한 농부나 노동자이기를 바란 나찌는 그들이 교육받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교황 역시 채석장에서 하루 종일 돌을 깎는 중노동을 하게 됐죠. 나찌가 시킨 강제노역이었습니다.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그러나 밤이 되면 보이티야는 시간을 쪼개 가장 위험한 공부를 합니다. 바로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이었죠. 만일 들통나면 아우슈비츠로 갈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톨릭 신부들은 위험인물로 여겨져서 수많은 신부들이 집단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1945년 블랙 썬데이, 나찌는 클라코프에 최후의 대대적 일격을 가합니다. 지하실에서 기도를 올리던 보이티야는 무사히 대학살의 현장을 빠져 나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2차 대전은 막을 내리죠.



전세가 역전되자 1945년 4월, 베를린 시내로 진입하는 소련 탱크를 쳐다보는 독일 여성들.



 


1945년, 독일 베를린에서의 소련 붉은 군대의 행렬. 베를린에서는 소련군이 도시에 진입하면서 많은 수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독일 여성들은 단연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다. 그 대부분의 여성들은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인 5월 2일에서 7일 사이에 당했다. 1945년에서 1946년 사이 소련의 독일 점령 지구에서 15만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인 아기들이 태어났고 또한 낙태로 많은 여성들이 태아와 함께 사망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소련군 도착 이후 3주 동안, 8만 7천 명의 여성들이 소련군 병사들에게 강간당했다. 위의 수치는 분명히 적게 추산한 것이며, 소련군의 오스트리아 진격로와 서부 폴란드를 가로질러 독일로 진격하는 길에 있던 촌락과 도시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은 합산하지 않은 것이다. 소련군은 서부로 가는 길에 헝가리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에서 강간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자전거를 빼앗는 러시아 군인.


1945년 1월 독일 Metgethen, 독일 여성들을 강간한 후 아이들과 함께 학살한 소련군대의 만행.


1946년, 포르투갈 인구의 거의 3분의 1인 70만 명의 사람들이 파티마에 몰려듭니다. 전쟁이 끝난 걸 감사하기 위해서였죠. 이제 39살이 된 루치아 수녀도 그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티마의 두 번째 비밀 중 한 가지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소련 공산당의 확장이었죠.


공산주의는 파티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아이들에게 러시아가 전 세계로 마수를 뻗칠 것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공산주의의 가장 큰 목표중의 하나가 바로 무신론입니다.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50년대에서 70년대를 거치면서 보이티야 신부는 소련의 후원을 받고 있는 폴란드정부와 가톨릭교회 사이에 날로 고조되는 팽팽한 긴장을 목격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냉전의 성모라는 별명이 붙은 파티마의 성모를 믿는 사람들은 점점 증가합니다.


소련 공산당은 폴란드나 동유럽에서 가톨릭교회를 말살시키던가 아니면 그 세력을 축소시키지 않는 한은 공산혁명이 성공을 거두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1970년 12월 14일,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된 것이 정부군의 무차별 노동자 학살로 끝을 맺습니다. 폴란드인들은 해방의 기폭제가 필요했습니다. 1978년 10월, 보이티야 추기경이 사상 최초의 폴란드출신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 직후 신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황 요한 바로오 2세의 선출로 폴란드인들은 큰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갑자기 국가적 차원을 넘어선 전 세계적 지도자가 생긴 것이니까 폴란드인들에게는 큰 희망이 아닐 수 없었죠.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Pope John Paul II rides in the Pope-mobile with his back to the camera and his arms outstretched as a corwod looks on during an eight day visit to Poland, June 1979.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1979년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79년 폴란드를 방문해 9년 전 일어난 그단스크 봉기의 희생자추모탑 앞에서 기도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78년 즉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왼쪽)는 조국인 폴란드의 자유화에 큰 관심을 기울여 79년 직접 폴란드를 방문한 데 이어 81년 1월 바티칸에서 바웬사(오른쪽)를 비롯한 자유노조 ‘연대’ 지도부를 개인적으로 접견하며 격려했다.

 

 

 

폴란드 항구 도시 그단스크의 조선소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며 노조 지도자로서 명성을 쌓아 온 레흐 바웬사는 1980년 8월 전국파업을 계기로 폴란드 민주화혁명에 불을 지폈다. 당시 시위대 속에서 목말을 타고 있는 바웬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폴란드의 봉기가 두려워진 소련은 새로 선출된 교황에게 마지못해 고국방문을 허락합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의 첫 번째 폴란드방문에 1천만 명의 환영인파가 몰렸습니다. 분위기가 고조된 틈을 놓치지 않고 폴란드 학생과 노동자들이 이번에는 연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봉기했죠. 소련 공산당은 교회의 영향을 무마하느라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연대운동을 뒷받침하는 핵심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철저히 비폭력일 것을 당부했어요. 서구세계에서는 소련 공산당을 무너뜨릴 유일한 방법은 최초의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뿐이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교황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유혈분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이던 1981년 5월 13일 오후, 갑자기 모든 게 정지합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전용 무게차를 타고 모여든 신도들을 축복하며 행진 중이었습니다. 정확히 64년 전 같은 날 파티마의 세 어린아이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교황이 파티마의 성모 티셔츠를 입은 어린이를 축복하려고 몸을 굽히는 순간 뜻밖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터키인 암살자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을 저격했던 것입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 총에 맞아 쓰러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당시 모습.



Pope John Paul II (1920–2005) greets the crowds in St Peter's Square at Easter, 1981.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암살범 메흐멧 알리 아그카.


Turkish assassin Mehmet Ali Agca, who shot and wounded Pope John Paul II in St Peter's Square in May, at the start of his trial, 21st July 1981.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회복 후 교황 암살범 터키인 메흐멧 알리 아그카를 만나 면담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암살범 알리 아그카가 소련의 최고 기밀문서 제8국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교황 저격사건의 배후는 아직도 모호합니다. 체포된 저격범 외에 어떤 사람들이 연루된 것인지 또 어떤 세력이 배후에 있는지 말이죠. 세월이 흐른다 해도 진실이 밝혀질지는 의문입니다.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즉시 수술을 받았습니다. 후송과정에서 이미 혈액의 60%를 흘린 뒤였지만 교황은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이를 두고 교황은 한 손이 총을 쏘았고 또 다른 손이 총알을 빗나가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가 발현한 바로 그 날 암살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두고 교황께서는 우연이 아니라 운명 혹은 기적으로 여겼습니다.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1981년, 기나긴 회복기간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가지 주문을 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맞았던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상에 씌어진 왕관에 박아 넣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주문은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파티마 관련 문서를 자신에게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신 겁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침묵의 서약을 한 루치아 수녀는 수도원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1981년, 암살당할 위기에 살아남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의 성모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는 소련 공산당을 붕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교황은 소련 공산당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 강령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함에 있어 본질적인 오류가 있다고 생각했죠.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1984년, 교황은 파티마의 성모상을 일시적으로 교황의 개인 기도실에 안치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루에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성모의 인도를 구하며 기도를 올렸죠. 교황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크렘린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최고회의의 마지막 지도자 콘스탄틴 체르넹코가 죽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당서기가 선출된 거죠.


교황과 미하일 고르바쵸프는 교황의 서재에서 처음 대면합니다.


1989년 12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반기고 있다.


고르바쵸프가 비록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산주의자라는 점을 교황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Разгон демонстрации протеста против введения военного положения

 

 

 

Демонстрации против падения уровня жизни, которые привели к созданию "Солидарности"

 

 

Во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Арест активиста "Солидарности"

 

 

 

Разгон демонстрации протеста против введения военного положения

 

 

 

Похороны погибшего во время разгонов активиста "Солидарности"

 

 

 

Женщина держит портреты активистов "Солидарности" погибших через три дня после введения военного положения

 

 

Очередная демонстрация протеста

 

 

Демонстрация "Солидарности" с требованием освободить политзаключенных


그러나 고르바쵸프는 폴란드의 반정부운동을 진압하라는 압력에 시달립니다.


그는 앞선 스탈린식의 지도자들이 동유럽반란을 진압할 때 했듯이 폴란드에 탱크부대를 보내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황을 중재자로 내세웠던 거죠.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1988년, 폴란드의 연대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냉전의 성모에게 바치던 기도가 마침내 답을 얻습니다. 소련이 다름 아닌 가톨릭교회의 폴란드 자유연대노조와의 평화중재를 부탁한 것입니다.

 

 

 

Папа Иоанн Павел II приехал поддержать поляков в их борьбе за свободу,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е власти не осмелились препятствовать его приезду


그동안 미국과 소련 양측의 냉전을 벌이면서 뛰었던 엄청난 군사력과 막대한 비용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총 한 번 쏘지 않고 얻어낸 결말이었습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1989년, 벨벳 혁명을 통해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의 통치로부터 자유를 얻으면서 이것은 공산당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1991년, 마침내 소련 공산당이 무너진 것이죠.

 

 

소련이 붕괴하자 철거되는 레닌 동상.


미래의 역사가들이 되돌아볼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될 겁니다. 교황으로서 그가 폴란드의 해방과 자유연대노조를 지지한 일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하기에 충분합니다.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많은 이들은 이것을 1917년 파티마의 성모가 세 어린이들에게 전한 예언이 실현된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자 교황이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발표할 것이라는 추측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여러 명의 교황이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알고도 덮어두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그건 매우 현명한 처사였습니다. 가령 파티마의 비밀이 5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반공산주의 혹은 반군사주의 감정이 극도로 치달아 오히려 냉전을 더 달구었을 테니까요.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그로부터 9년이 더 흐른 2000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침내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공표합니다. 이제 93살이 된 루치아 수녀는 56년 전 자신이 작성한 문서를 인증합니다.


루치아 수녀는 1944년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에 관해 썼습니다. 그동안 일반인들 사이에는 불안과 혹기심만 가득했어요.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심사숙고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깨달은 거죠. 서기 2000년은 새천년이 시작되는 해인데다가 교회창립 2000년을 맞는 대희년인 것입니다. 매우 적절한 시기였어요.

(세라핌 페레이라 에 실바, 라이에라 파티마 교구 주교)


2000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가 발현한지 83주년 되는 해, 어린 하신타와 프란치스코를 성자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시복식을 추구하기 위해 거의 100만 명의 순례자가 파티마에 모입니다. 이날 연단에는 루치아 수녀가 앉아 바티칸 사자가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루치아 수녀.


그 세 번째 비밀에서 한 천사가 왼손에 검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세상을 가리키며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고 외치죠.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세 번째 현시에서 흰색 옷을 입은 주교가 나오는데 루치아는 그것을 교황으로 추정합니다. 그 주교는 성직자들을 데리고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 험난한 산길을 오릅니다. 가는 길에 널린 시체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갑자기 군인들이 그를 공격합니다.


군인들은 그에게 총과 화살을 쏘며 공격하고 주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쓰러져 죽습니다.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 내용 삽화.


80년간이나 비밀에 부쳐졌던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은 끔찍한 대학살에 관한 암시였습니다. TV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세 번째 비밀의 발표는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과연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1981년, 세 번째 비밀의 내용을 알게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실 바로 흰 옷의 주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역시 저격을 당한 적이 있으니까요.

(세라핌 페레이라 에 실바, 라이에라 파티마 교구 주교)


교황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번째 비밀을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해석에는 파티마의 성모가 자신이 저격당했을 때 목숨을 구해줬다는 믿음도 한 몫 하게 됐지요.

(토머스 리스 S. J. 신부 / 아메리카誌 편집장)


많은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해석을 믿고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불길한 예언은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의심을 품습니다.


저 역시 세 번째 비밀에 실망했어요. 세 번째 비밀은 교황에 대한 암살시도 예언이라고 해석됐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거기선 교황이라 한 적도 없고 그저 흰 옷을 입은 주교라고 했을 뿐입니다. 또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진다고 했는데, 아 그건 암살범 한 명이 교황을 노린 사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 예언에서는 그가 죽을 거라고 했는데 교황은 죽지 않았어요.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또 다른 이들은 바티칸이 세 번째 비밀의 성스러운 부분을 아직도 감추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세 번째 비밀에 관한 두 가지 문서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만 발표되고 나머지 하나는 비밀에 싸여 있죠.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감춰진 문서에는 성모 마리아가 루치아에게 전했다는 말이 담겨져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부에서는 그 문서에 현재 교회 내부의 부패를 폭로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바티칸이 감추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 비밀이란 고위 성직자들의 심각한 부패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 번째 비밀이죠. 루치아 수녀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1960년대부터 줄곧 루치아 수녀에게 침묵하라는 명령을 내렸겠습니까?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의심을 품습니다. 아직까지 비밀에 감추어진 문서의 내용은 러시아의 도덕적 타락과 옛 소련 공산주의 국가들이 비밀리에 다시 소생하여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경고란 겁니다.


1989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낙태가 크게 증가했고 포르노와 알콜중독도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혼율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죠.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가족과 가정이 위험에 처한 걸 알면 세 번째 비밀의 나머지 내용도 공개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 / ‘Fatima Crusader' 발행인)


1917년, 포르투갈 작은 마을의 목동 루치아, 하신타, 프란치스코는 자신들 앞에 나타난 존재가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발표합니다. 비밀의 해석을 싸고 거센 논란이 일었지만 이미 파티마의 이야기는 대중문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파티마의 모든 메시지와 그것이 담고 있는 비밀과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대한 악의 힘이 있는데 그것은 무력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의 귀의 특히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성모 마리아께서 파티마에서 하신 말씀은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 우리가 입힌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평화와 우정이 찾아온다는 거죠.

(세라핌 페레이라 에 실바. 레이리아 파티마 교구 주교)


평화를 갈구하는 성모의 메시지는 시간을 초월한 것입니다. 전쟁의 상처로 가득한 보스니아의 시골마을, 이곳 사람들은 지난 19년 간 성모 마리아가 메주고리예 마을에 나타나 십자가로 돌아가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메주고리예(Medjugorje)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모습. (1981년 6월 24일 수요일 ~ 현재진행형)

 

이러한 발현은 매우 기이하긴 하지만 그것이 폭력과 전쟁 그리고 인종청소에 반대되는 계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마이클 헌트 신부 / 성 바오로 신문)


이곳 마을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가 회개하고 기도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라는 1917년 파티마의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만만치 않죠.


미국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장소를 조사해본 결과 전 많은 순례자들이 전에 메주고리예에 다녀온 사실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앞선 경험이 또 다른 발현을 유도할 심리학적 전염 형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 니켈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집필진)


한편 교회 내부에서도 의혹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 메주고리예에 관해서는 파티마에 가졌던 의혹보다 더 큰 의혹을 품고 있지만 거길 찾는 사람들의 의견은 존중합니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세라핌 페레이라 에 실바. 레이리아 파티마 교구 주교)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는, Vicka, Jakov, Ivanka, Mirjana, Marija, Ivan.


메주고리예에 나타났다는 성모 마리아는 진실일까요? 아니면 밀레니엄 히스테리에 불과할까요? 이번에는 교황도 답을 줄 수 없습니다. 교황은 쇠약해졌고 많은 일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5년 4월 2일 선종.)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은둔중인 루치아 수녀로부터도 해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2005년 2월 13일 루치아 수녀 선종.) 사람들은 루치아 수녀가 1917년 성모 발현을 굳게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의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메시지를 전한 사람이 아닌 메시지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Ivan Dragicevic.

 

이반은 1965년 5월 25일생으로 지금도 성모님을 매일 뵙는다(첫 발현 당시 16세). 1994년 10월 23일 Laureen Murphy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미국에 살며 메주고리예를 오고 가고 있다. 1982년 7월부터 성모님께서는 이반에게 매주 두 번씩 기도 그룹을 인도하도록 하셨다. 특별히 이 기도 모임에서 젊은이들과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셨다.

 

 

 

 

 

 

Vicka Ivankovic.

 

비츠카는 1964년 9월 9일 생으로 지금도 매일 성모님을 뵙는다(첫 발현 당시 17세). 1980년대 말 성모님께서 성모님의 일생을 받아쓰게 하셨는데 두 권의 노트북 분량이 되었다. 이는 성모님의 시간에 맞추어 널리 알려질 것이다. 2002년 1월 26일 Mario Mijatovic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비츠카에게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셨다.

 

 

 

 

 

 

Marija Pavlovic-Lunetti.

 

마리야는 1965년 4월 1일 생으로 지금도 매일 성모님을 뵙는다. 매달 25일, 성모님께서는 메주고리예 본당과 전 세계에 주시는 메시지를 마리야에게 주신다(첫 발현 당시 16세). 1984년 3월 1일부터 1987년 1월 8일까지 성모님께서는 매주 목요일/매월 25일에 메시지를 주셨다. 이탈리아에 살며 메주고리예를 오고 가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연옥에 있는 영혼과 신앙심이 깊은 수녀를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셨다.

 

 

 

 

 

 

Ivanka Ivankovic-Elez.

 

이반카는 1966년 7월 21일생으로 1985년 5월 7일까지는 성모님을 매일 뵈었다. 성모님을 매일 뵙는 것이 마지막이 된 그날, 성모님께서는 열 번째 비밀을 알려 주시면서, 이반카에게는 평생 동안 일 년에 한 번씩만, 발현 기념일인 6월 25일에 발현하겠다고 하셨다(첫 발현 당시 15세).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반카에게 가정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셨다.

 

 

 

 

 

 

Jakov Colo.

 

야곱은 1971년 3월 6일생으로 1998년 9월 12일까지는 매일 성모님을 뵈었다. 그러나 성모님을 매일 뵙는 것이 마지막이 된 그날, 성모님께서는 열 번째 비밀을 알려 주시면서, 야콥에게는 평생 동안 일 년에 한 번씩만, 12월 25일 성탄절에 발현하겠다고 하셨다(첫 발현 당시 10세).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메주고리예에 살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야곱에게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셨다.

 

 

 

 

 

 

Mirjana Dragicevic-Soldo.

 

미리야나는 1965년 3월 18일생으로 1982년 12월 25일까지는 매일 성모님을 뵈었다. 그러나 미리야나에게는 성모님을 매일 뵙는 것이 마지막이 된 그날, 성모님께서는 열 번째이자 마지막 비밀을 알려 주시면서, 앞으로는 평생 동안 일 년에 한 번씩만, 3월 18일 생일에만 발현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1987년 8월 2일부터는 매달 2일, 미리야나는 마음속에서 성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직접 뵙기도 한다.(첫 발현 당시 16세) 1989년 9월 16일 Marko Soldo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녀는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사명도 받았다.

http://serony.com/ken/tag/%EC%B2%9C%EC%A3%BC%EA%B5%90/ 

 


세상은 평화를 원합니다. 평화는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존중하며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파티마의 메시지죠.

(세라핌 페레이라 에 실바. 레이리아 파티마 교구 주교)


파티마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세 명의 어린이들의 믿음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끝났습니다. 과연 우리는 천진한 세 명의 포르투갈 어린들과 이들이 20세기 역사에 끼친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미래의 예언, 우연한 일치 아니면 한낮 이야기꺼리였을까요?


회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파티마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만 믿을 수 있죠.

(메리 크리즈 파티마의 성모 푸른군대 브리지포트 교구장)


출처 : HISTORY'S MYSTERIES

www.HistoryChannel.com  JSDTV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OqAj&articleno=636


파티마의 세 번째 예언. 

http://www.youtube.com/watch?v=aHIyYEpjQAI&list=PL16F8829ADE4F73E7 (1)

http://www.youtube.com/watch?v=tvX-M_I9npI&list=PL16F8829ADE4F73E7&index=2 (2)

http://www.youtube.com/watch?v=vOV8SUb50Vw&index=3&list=PL16F8829ADE4F73E7 (3)

http://www.youtube.com/watch?v=c3sfQ01CqSE&index=4&list=PL16F8829ADE4F73E7 (4)

http://www.youtube.com/watch?v=c_VoeMcjQhQ&list=PL16F8829ADE4F73E7&index=6 (5)

http://www.youtube.com/watch?v=yHWhBtDhKjA&index=7&list=PL16F8829ADE4F73E7 (6)

 

 

 

 

파티마의 예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톨릭 음모론 1] 스티브 베리 <세 번째 비밀>

07.04.27 10:02l최종 업데이트 07.04.27 11:54l
김준희(thewho)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6919&CMPT_CD=SEARCH 

 

 

세번째의 비밀- 밝은세상

 

가톨릭의 역사 또는 불가사의 현상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파티마'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파티마라는 곳은 포르투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이었다.

1917년 5월 13일, 루치아, 프란시스코, 히야친타라는 3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때 주위에 번개가 치면서 오로라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평소에 비를 피하던 곳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에서 비가 아니라, 공중에 떠있는 한 여인을 보았다. 폭이 좁은 스커트에 재킷,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둥근 물체를 들고 있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도록 기도할 것을 부탁하며,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에 이곳에 나타나겠다고 약속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빛의 여인은 매월 13일에 나타났다. 그리고 10월 13일이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그 증거로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10월 13일이 되자 파티마에는 무려 7만명이 모여들었다. 세 아이들이 기도를 하는 동안 빛의 여인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여인은 자신을 가리켜 '로사리오의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 3의 비밀'을 자세하게 알려주면서, 이 내용은 오직 교황에게만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기적이 연출되었다. 여인은 하늘로 날아올랐고, 태양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태양은 여러가지 색으로 바뀌면서 빠르게 회전했다. 서서히 땅을 향해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7만명의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채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눈물을 흘렸다. 마치 종말이 온 것만 같았다.

이 현상은 무려 10분 동안 계속되었다. 파티마에서 40km 떨어진 곳에서도 이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리스본의 한 일간지 편집장은 직접 이 현상을 취재해서 기사화 했다. 그때부터 파티마는 유명한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파티마의 성모'라고 부르는 성모 현현(顯現)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에 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 어떤 사람은 집단 환각과 집단 히스테리의 전형적인 경우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려 7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집단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가 직접 문서로 작성하고 봉인해서 1957년에 로마의 교황 비오 12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 문서를 처음으로 읽은 사람은 1960년의 교황 바오로 6세였다. 당시에 그 모습을 지켜본 교황청의 직원에 의하면, 바오로 6세는 이 문서를 읽고나서 새파랗게 질렸다고 한다. 과연 '세 번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파티마의 예언'을 놓고 벌어지는 교황청의 암투

스티브 베리의 역사 미스터리 <세 번째 비밀>은 바로 이 파티마의 예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역사 미스터리인 만큼 '파티마의 성모'와 관련된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적절히 뒤섞고 있다.

<세 번째 비밀>의 무대는 로마의 바티칸이다. 클레멘스 15세라는 가상의 인물이 교황으로 등장한다. 클레멘스 15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파티마 세 번째 비밀에 유난히 많은 관심을 갖는다.

세 번째 비밀은 바티칸의 비밀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오직 교황 뿐이다. 클레멘스 15세는 '이전 교황들은 뭔가를 크게 잘못 알고 있었어'라고 말한다.

역사 미스터리의 기본적인 구도가 그렇듯이, <세 번째 비밀>에도 클레멘스 15세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그에게 대항하는 사람이 있다. 흥미롭게도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교황청에 있는 신부와 추기경이다. 클레멘스 15세는 나이가 많다.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다. 때문에 추기경들은 다음 교황이 될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클레멘스 15세의 관심은 '세 번째 비밀'에 몰려있다. 죽기 전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세 번째 비밀에 얽힌 다른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다. 여기에 저항하는 추기경들이 있기 때문이다. 완고한 추기경들은 '파티마의 비밀'은 단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것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파티마의 세 아이는 모두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양치기들이었다. 2000년을 이어져 온 가톨릭 교회 조직이, 문맹에 가까운 아이가 만든 문서 조각 한 장으로 인해서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클레멘스 15세의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작품의 무대는 바티칸에서 시작하지만, 루마니아의 숲과 보스니아의 산악지역, 독일의 작은 마을까지 종횡무진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교황과, 그를 막으려는 보수적인 추기경의 싸움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이와 함께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장소인 바티칸의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바티칸 내부의 권력다툼, 교황이 되려고 하는 추기경의 음모와 은밀한 협박, 보수적인 추기경과 개혁을 원하는 신부의 논쟁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비밀이다. 세 번째 비밀이 무엇이기에 바티칸에서는 그렇게 싸우는 것일까?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세 번째 비밀>

사실 '세 번째 비밀'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2000년 3월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 내용 자체가 워낙 우화적이고 비밀스럽기 때문에, '공개된 것 보다 더 많은 내용이 있을 것이다'라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스티브 베리의 <세 번째 비밀>도 그런 가정으로 부터 시작한다.

<세 번째 비밀>은 <다 빈치 코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음모론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 소재로 파티마의 성모를 택했다. 스티브 베리는 어린 시절에 받은 가톨릭 교육 그리고 평생 동안 파티마에 매료 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성모의 현현은 그동안 지구 곳곳에서 여러 차례 있어왔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라 살레트',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 프랑스의 유명한 '루르드'가 바로 대표적인 장소이다. 이 현상들에는 공통점도 있다. 대부분 문맹에 가까운 아이들에게 나타났다는 점, 기적적인 치유와 종말에 대한 예언이 뒤따른다는 점 등이다.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성모가 살았던 곳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곳에서부터 수 천km 떨어진 유럽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럽과 함께 2천 년 전의 이스라엘에도 관심을 두는 것은 어떨까.

이스라엘로 눈길을 돌리면 그곳에는 또 다른 형태의 역사 미스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묘사하는 성모의 모습은 조금 색다를지도 모른다. 2천 년 전의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갈릴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세 번째 비밀> 1, 2. 스티브 베리 지음 / 정영문 옮김. 밝은세상 펴냄.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전후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작품들을 소재별로 분류해서 한 편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처 : 지금 나는 깨어있다
글쓴이 : 등대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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