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스크랩] 경제위기와 전쟁 그리고 통화패권

코스모칸 2016. 9. 6. 07:57


역사를 복기해보면 서방금융세력들은 그동안 대공황과 전쟁으로 그들이 원하는 금권을 쟁취하였고 절대 권력에 더 가깝게 올라갔습니다. 다시 말해 근현대사는 서방금융세력들이 절대적인 금권을 차지하고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때문에 그 수단으로 대공황과 전쟁, 테러등이 사용된 것입니다. 요즘 다시 경제위기와 전쟁이 함께 언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입니다.


서방금융세력들은 1907년 대공황을 일으켜 FRB를 세워 한국가의 금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다시 1929년 대공황을 일으켜 달러를 전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차 중동전쟁을 일으켜서 달러를 석유결제에 연동시켜(페트로달러의 탄생) 마침내 마음껏 돈을 찍어 써도 문제가 없는 지구 최상의 금권력을 손안에 넣게 됩니다.

또 다른 공황이 예상되는 지금 상황은 성격이 약간 다릅니다. 그동안의 대공황은 서방금융세력들이 본인들이 쟁취하고자하는 것들을 얻어내고자 고의적으로 유발되었다면 지금은 달러패권에 반기를 든 세력들의(중국, 러시아, 사우디, 이란, 이라크) 급부상에 의해 먼저 페트로달러가 공격받고 달러패권이 끝나가는 상황의 공황에 따른 출혈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전리품 획득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동시에 수행해야 상황이어서 서방금융세력들의 머리는 어느때보다 복잡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또한 공황상태는 최소하면서 본인들이 원하는 금융패권을 최대한 차지하기 위해 서방금융세력들과의 대립과 협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1. 1907년 대공황과 FRB의 탄생

● 주기적인 경제위기와 로스차일드가 선택한 조지 피바디 그리고 JP모건

1837년, 1857년, 1873년, 1884년, 1893년과 마찬가지로 금융재벌들은 경기가 과열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거품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 또한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기는 필연적 결과였다. 이 모든 과정은 금융재벌이 어항 속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과 같았다.

금융재벌들은 마치 어항에 물을 붓듯 시중에 돈을 풀어 경제주체에게 대량으로 화폐를 주입했다. 돈을 풀면 각계각층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욕심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부를 창출하는데, 어항 속의 물고기가 각종 양분을 열심히 흡수해 점점 살이 오르는 것과 같다. 금융재벌들이 수확의 시기가 왔음을 알고 어항의 물을 빼면, 물고기들은 잡혀 먹히는 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항의 물을 빼고 고기들을 처분하는 시기는 몇 개의 대형 은행들만 알고 있었다. 한 나라가 민영 중앙은행 제도를 설립한 이후로는 은행재벌들이 물을 대고 빼기가 더 수월해지므로 수확도 한층 많아질 것이다. 경제의 발전과 쇠퇴, 재산의 축적과 증발은 모두 은행재벌들이 진행하는 ‘과학적 사육’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1854년까지만 해도 조지 피바디는 100만 파운드급 은행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고작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000만 파운드를 벌어들여 미국의 중량급 은행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실 피바디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책동한 1857년의 경제위기 가운데 미국 철도 채권과 정부 채권에 대규모로 투자했다가 영국의 은행가들이 투매할 때 큰 손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잉글랜드은행이 파산 직전에 있는 그에게 80만 파운드의 신용대출을 긴급 제공해 기적적으로 소생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그 동안 매우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던 피바디가 모든 재산을 털어 당시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던 미국의 국채들을 사들였다.

1857년의 경제위기는 1837년 당시 10년을 끌던 불황과 달랐다. 미국 경제가 불과 1년 만에 불황의 늪을 빠져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바디의 수중에 미국 채권들은 그를 슈퍼급 부호로 빠르게 변신시켜주었다. 이는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영국 채권을 사들이던 1815년의 상황과 유사하다. 정확한 내부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다면 파산의 악몽에서 막 깨어난 피바디가 미국의 채권을 그토록 과감하게 사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로스차일드의 홍보대리인 역할을 하며 로스차일드의 도움으로 대부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피바디는 방대한 사업을 물려줄 후계자 문제로 늘 고심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젊은 주니어스 모건을 영입했다. 피바디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 주니어스 모건이 사업을 물려받았으며 나중에 다시 JP모건이 회사를 물려받은 후 회사이름을 JP모건이라고 지었다. 모건가는 조지 피바디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관계를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 1907년 대공황과 전리품

190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890년에 제정된 ‘셔먼독점금지법’을 부활시켰다. 셔먼독점금지법은 뉴욕을 중심으로 전미지역에 경제독점 네트워크를 형성하던 J.P모건을 견제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JP모건은 반격에 나선다.

1907년, 당시 미국의 소규모 은행들은 과다한 대출로 지급준비금의 1%도 안 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고객이 1백 달러를 은행에 맡겼을 때 1달러 정도만 되돌려 줄 능력이 없었다. 이같은 상황을 악용해 거대 은행 J.P모건은 미국 내 대부분의 은행들이 파산직전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여론은 J.P모건의 생각대로 적중해 은행에 돈을 맡긴 민간이 자금을 회수하려는 시도가 빗발쳤고 결국 시중의 일반은행들은 일제히 도산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대공황이 발생하게 된다.

모건과 그의 배후에 있는 국제 금융재벌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예측되는 성과를 정확하게 계산했다. 첫째,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사실’로 증명하였다. 둘째, 소규모의 경쟁 금융기업을 도산시켜 합병하였다. 특히 자산신탁회사, 즉 투신사는 은행가들의 눈엣가시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군침을 흘려온 중요 기업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 1907년 대공황의 최대 전리품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 of 1913)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방준비은행법에 서명한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할 무렵, 유럽의 은행재벌들은 이미 더 효과적이고 더 복잡한 법정화폐 체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법정화폐(fiat money)는 황금과 백은이 대출 총량에 상당한 제약을 미치는 국면에서 완전히 탈피해 훨씬 융통성 있고 은밀하게 화폐를 통제할 수 있게 했다.

화폐 공급을 무한대로 늘려 얻는 수익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대출 이자의 손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알게 된 은행가들은 갑자기 법정화폐의 가장 열렬한 제창자로 변신했다. 그들은 화폐 유통량을 급증시켜 저축자들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빼앗았다. 통화 팽창은 은행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제 경매하는 방식보다 훨씬 그럴듯했으므로 국민의 저항감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그런 사실을 잘 모르게 할 수도 있었다.

은행재벌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인플레이션 관련 경제학 연구는 순수 수학 게임의 궤도로 진입해갔다. 지폐 발행의 증가에 따른 통화 팽창(currency inflation)의 개념은 오늘날 가격 상승에 따른 통화 팽창(price inflation) 개념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통화 팽창에 대해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Keynes)는 따끔하게 꼬집었다. “정부는 이 방법을 이용해 눈에 띄지 않게 국민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100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이러한 절도 행위를 발견해내기 어렵다.”


1913년 6월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된지 세 달 후 하원에서 연방준비은행법이 이른바, 글래스 법안이란 명칭으로 제출되어 9월 18일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상원에서는 글래스-오언법안으로 이름이 바뀌어 제출되었는데 글래스와 오언은 둘 다 금융가 집안 출신이었다. 1913년 12월 23일 상원을 통과한 법안은 이제 윌슨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 둔 상태였는데 윌슨은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이라는 국민의 여망이 무색하게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지 한 시간만에 정식으로 법안에 서명하여, 마침내 길고 긴 여로끝에 미국은 ‘민간 은행이 화폐발행의 독점권을 가지고 또 금리 조작을 통해 나라의 통화정책을 좌우하는 연방준비은행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윌슨 대통령은 세상을 뜨기전에 자신이 연방준비은행 설립 과정에서 금융 자본에 의해 ‘사기’를 당했다고 털어 놓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죽기 전에 “나는 무의식 중에 내 나라를 망쳐 놓았다” 라고 고백하였다.


1907년 대공황을 일으켜 중앙은행 부재의 취약성을 증명하고 1913년에 서방금융세력은 연방준비은행법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신용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의회가 저지른 최대의 범죄는 바로 화폐 체제 법안인 연방준비은행법이다. 이 은행법의 통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악랄한 입법 범죄이다. 양당의 지도자들이 밀실에서 담합해 국민이 정부로부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앗아간 것이다.


그리고 서방금융세력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법정화폐 체제로 전환하기로 전략을 수정한다. 법정화폐는 한정된 황금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정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면 실물 가치가 떨어지므로 금융재벌이 저축자들로부터 쉽게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연방준비위원회의 설립으로 세계 화폐의 발행 주체가 정부에서 서방금융세력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담보없는' 법정화폐는 금융재벌들에게 더 이상 독이 아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뀌게 되는것이다.


* 여담으로 JP모건은 FRB를 세우기 위해 반대하던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이들을 타이타닉호에 태우고 수장시킵니다.

http://goo.gl/c7qIXw



● 1914년~1918년 1차 세계대전,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이동

지금의 세계 패권국은 미국이지만 19세기까지 세계 패권국은 영국의 세기였다. 그러면 언제 어떤 사건이 영국 패권 쇠락의 결정적 증거로 볼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이 대공황 중이었던 시기의 1931년 영국의 금태환 정지를 내세운다. 영국은 1840년대 이래 대영제국 최대 업적의 하나로 자랑해온 자유무역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원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수많은 나라에서 외환 거래의 기초였던 금본위제도를 폐기한 것이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이동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으로 하여금 쌓아 놓았던 대부분의 잉여 자본을 지출케 하였는데, 이것이 미국으로의 패권이동을 가속화 시켰다. 게다가 미국이 무기판매를 통하여 벌어들인 부를 이용하여 영국에게 빚진 채무를 상환해 버림으로서 파운드화의 결제통화로서의 힘은 급격히 약하됨과 동시에 달러의 시대가 개막된다. 즉, 국민국가의 형태의 영국이 군산복합체로서의 미국에게 압도당해버린 것이다.


영국의 로스차일드가 가진 금본위 파운드화의 금권력에서 미국의 록펠러에게로 원유본위(금본위폐기) 달러로 넘어가는 단초가 바로 세계 1차세계대전이었다.





2. 1929년 대공황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획득

● 1929년 대공황, 1907년 대공황의 재현

서방금융세력은 1907년 공황으로 연방준비은행을 세웠고,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를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 이후 모건은 총격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민중의 분노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쏠렸다. 이를 막기 위해, 하수인인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루즈벨트는 뉴딜을 내세웠지만, 그 자신도 전혀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처럼 민중의 눈과 입을 가려야 했다. 해서, 나온 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이다. 이 법에 의해 투자은행은 유가증권 인수와 매매업무로 영역이 제한됐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킨 것이다.

공황조작의 첫 단계는 연준은이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1921년 6월 317억 달러였던 통화량이 1929년 6월에는 457억 달러가 되어 44%나 늘어났다. 이렇게 돈이 넘쳐나자 돈벌기가 쉬어졌고 무엇이든 투자하는대로 이익이 되어 돌아왔으며 특히 주식 매매가 가장 인기가 높아 주식을 사지않는 사람들은 바보취급을 당할 정도였다.

이는 바로 금융가 들이 제도적으로 주식을 사기 쉽도록 만들고 모든 언론 매체를 총동원하여 주식매매를 권장한 결과였다. ‘국제금융가 들과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대부분의 주요 신문을 소유하고 칼럼니스트들까지 장악했다. 그래서 부패한 그들 일당이 보이지 않는 정부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행동에 동조하지 않는 공직자들을 순종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있다.’ 

이윽고 1929년 10월 24일, 뉴욕의 큰 은행들은 산하 모든 브로커 기관들에게 ‘24시간 이내 지불조항’을 적용하여 융자해준 모든 콜 대출을 24시간내에 전부 거둬들이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주식 브로커나 주식을 산 모든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금액에 관계없이 소유한 주식을 몽땅 급히 팔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주식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일어난 악명 높은 1929년의 위대한 몰락(The Great Crash 1929)이며, 그 여파로 전 세계가 공황에 휩싸이게 되었다.

공황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있는 대로 돈을 찾아 증권 회사에 대출금을 갚으려 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거기에다가 당시 연준은은 무자비하게 통화량을 수축시켜 1929년 457억 달러에 달하던 통화량을 4년 후인 1933년에는 3백억 달러로 만들어 극심한 디플레를 조성하였다.

결국 전 미국에서 1만 6천개의 은행이 도산하고 기업체의 2/3가 파산하였다. 재산을 빼앗겨 가난해진 사람들은 늘고 공장의 생산량은 줄어들어 실업자 수는 급증하였다. 돈이 귀하니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도 어렵다.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면 모든 물가는 내려가, 돈 있는 사람들은 헐값에 부동산이나 동산을 사들이게 된다.

바로 1929년 대공황은 이렇게 조작되어 실업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극심한 경제파탄현상을 보였다. 이 대공황으로 잃은 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들에게 들어갔다. 즉 식파동의 내막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은 미리 주식을 팔아 안전한 금을 사두었고, 공황이 일어난 다음에는 이전 가치의 불과 몇% 가격으로 기업과 부동산등의 전리품을 다시 긁어모았다.


● 제 2차 세계대전과 달러기축통화라는 역사상 최대의 전리품

1929년 대공황도 뉴욕 월가의 주가폭락으로 시작되어 전세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면서 전세계가 대공황으로 빠져 들었고, 1차대전으로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이를 견디지 못한 독일과 일본이 세계2차대전(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을 일으켰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세계대전쟁으로 말미암아 대공황은 해결이 되었다. 물론 세계2차대전은 미국을 슈퍼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유럽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초토화 되었다. 미국은 전세계에 군수물자와 식량을 공급하면서 강대국으로 전환되었다.


미국에서 대공황이 종결된 것은 오직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이었으며,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종결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을 아무리 찬미하는 사람일지라도 엄청나게 선전된 그의 뉴딜정책이 실제로 거의 또는 아무런 구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되고, 1942년 이전에는 미국이 능동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던 전쟁이지만, 그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의 기업이 무제한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되면서 경제적 수요가 엄청나게 뛰어올랐던 것이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 국가는 1,850억달러 이상을 그러한 물자에 소비하게 되고, GNP 중 군사용 소비가 점하는 비율은 1939년에서 1945년까지 1.5%에서 거의 40%로 상승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은 엄청난 양의 장비를 영국과 심지어 소련에까지, 렌드-리즈(1941년에 통과된 미국의 연합국에 대한 무기대여법―역주)를 통하여 공급하였다. (한편, 독일에서는, 포드, GM, ITT 같은 미국 대기업의 자회사들에 의해서 온갖 종류의 비행기와 탱크와 그밖의 전쟁도구들이 나치를 위해, 진주만 이후에도, 생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얘기이다.) 그리하여, 대공황의 핵심 문제―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는 거대한 군수품의 주문이라는 수단으로 국가가 경제적 수요를 대규모로 만들어냄으로써 해소된 것이다.

보통의 미국인의 처지에서 본다면, 워싱턴의 군비지출 잔치는 사실상 완전고용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높은 임금을 가져다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대공황으로 인한 광범한 빈곤이 종식되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유례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전시(戰時) 경제 붐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 나라의 사업가들과 기업들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이윤을 실현하였다. 역사가 스튜어트 브랜디즈에 의하면,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의 가장 큰 2,000개 기업의 순이익은 1936-1939년 동안의 그것보다 40% 더 높은 것이었다. 그러한 엄청난 이익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수십억달러의 군수물자를 주문하고, 가격통제에 실패하고, 회사들이 남긴 이익에 과세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관대함은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에 혜택을 주었지만, 특히 ‘대기업’으로 알려진 거대 엘리트회사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전쟁 동안 총 60개 미만의 기업이 수익이 큰 군사 및 그밖의 국가에 의한 발주의 75%를 획득했다. 거대기업―포드, IBM, 기타―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군사비라는 ‘풍요로운’ 사료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전쟁 돼지들’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예를 들어, IBM은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전쟁 관련 주문 덕분에 연간 4,600만달러에서 1억4천만달러로 판매를 신장시켰고, 그에 따라 이윤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브레튼우즈 체제는 탄생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피폐해진 유럽에 비해 미국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세계의 병참기지로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전세계 금보유량의 70%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미국 달러는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없다. 미국 달러화를 기축 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실시하는 것으로서,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그 외에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국에 필요한 외화를 공급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전후 부흥과 후진국개발을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설립한다. 그래서 그 당시엔 전 세계의 통화가 실제 금으로 보장되었고 세계 기축 통화가 파운드에서 달러로 이동하게 되었다.



● 전쟁의 또다른 기능


일본경제를 비판했던 내용이 모두 적중해 "악마의 예언"이라는 별명을 얻은 게이오대 경제학부 교수 "가네코 마사루"


1944년 일본정부는 전쟁을 명목으로 부동산,재산에 90%의 세금을 부과한다. 그리고 일본 전 국민의 예금통장을 봉쇄하여 사실상 국가의 빚을 국민의 돈으로 다 갚는다. 재정적자를 계속 해서 무리하게 중앙은행의 매입으로 버티려고 하는 이런 상태는 근본적으로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경고한다.


2차 세계대전 발생직전까지 일본의 부채비율은 204%였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6년 현재 일본의 부채비율은 250%가 넘는 수준이다. 일본이 최근 전쟁가능국으로 다시 전환하려는 것도 우연이 아닐것이다.


일본, 60년 만의 개헌으로 ‘전쟁 가능국’ 되나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71321



● 금본위제달러의 폐지. 사실상의 디폴트 선언.


1971년 8월 닉슨쇼크 -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발표한 달러 방어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충격을 말한다. 이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와 금본위제의 폐지를 의미한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포함해 많은 대외 원조와 군사비 지출로 경제력이 크게 약해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국제수지가 무척 악화되어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외국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금 교환 요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미국의 금 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닉슨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 정지, 수입 과징금 10% 실시 등을 포함하는 달러 방어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국제적 금의 창구를 닫고 국제적 채무를 금으로 갚던 합의도 중단했다. 실상 디폴트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변국은 미국에게서 금을 받을수 없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신용기반의 달러종이쪼가리를 받게 된것이다.그 때 부터 달러와 금의 직접적인 연결은 끊어져 버렸고, 따라서 달러 및 다른 나라의 화폐들도 금으로 보장되지 않는 불환지폐가 되어버린다. 달러는 곧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사실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는 서방금융세력들이 큰돈을 벌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서방금융세력들이 세계를 장악한 것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금융자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업자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지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미영의 금융자본이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는 역할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방금융세력 내부에서의 불만, 즉 이미 미국에 정착하여 기득권을 누리던 미국적인 유태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어야만 했다. 이를 통해 미국 달러가 금에 제한되어 있던 족쇄를 풀고 마음껏 유동성 창출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다수 유태인들이 원한 것은 산업자본이 아니다. 힘들게 3D 업종에서 일하기보다 앉아서 돈 계산과 언론만 장악하면 되는 일을 선호했던 것이다.





3. 4차 중동전쟁과 페트로달러의 탄생


● 금기반의 달러에서 원유기반의 달러로의 전환


미국은 다시 한번 위기를 전쟁으로 타계한다. 달러의 기축통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골드달러에서 오일달러로 탈바꿈을 시도한다. 그 당시 닉슨의 뒤에는 행정관리 예산국장 조지 슐츠(George P. Shultz), 미연방준비은행(FRB)에서 국제통화업무에 대한 재무역을 맡은 폴 볼커(Paul Volcker),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및 런던의 로스차일드(Rothschild)가 있었


19735, 스웨덴에서 빌데르베르크 컨퍼런스가 열였다. 미정부의 헨리 키신저, 석유 재벌들인 ARCO의 로버트 앤더슨(Robert O. Anderson), BP의 에릭 드레이크(Eric Drake), Shell의 게릿 와그너(Gerrit Wagner), 금융 재벌들인 바론 에드먼드 로스차일드(Baron Edmund Rothschild),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와 그 하수인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독일 재무장관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영국 노동당 대표 데니스 힐리(Denis Healey) 등등이 참석을 하여 그들은 계략을 세우게 된.


당시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가격을 대폭 인상시키고 그에 따른 이익을 그들이 지정하는 은행에 입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 원유가격의 대폭인상을 용인하면서, 모든 거래는 반드시 달러로만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된다. 달러는 금기반이 아닌 원유 기반의 페트로달러로 부활한 것이다. 석유메이저에 의하여 실속이 없었던 중동산유국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던 것이 입금된 은행에서 이자를 10% 지불하기로 하였고, 대외적으로는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수출국기구)의 힘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여졌지만, 이젠 금으로 달러를 대신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전세계에 달러의 영향력을 한층 더 끌어 올릴 수가 있고, 평가절하된 달러를 현실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 또한, 오일 폭등으로 인하여 가장 고통 받을 나라는 제3세계였기에 달러를 쥔 미국과 석유를 쥔 메이저들의 제3세계 영향력은 한층 더 올라갈 수가 있었다.

 

유 폭등의 원인을 만들어 내기에는 중동이 최적이었기에, 소위 욤 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또는 10월 전쟁이라 일컫는 제4차 중동전쟁이 그 해 10 6일부터 10 25일까지 일어나게 된. 친미적인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느닷없이 미국의 참전이 뻔히 예상되는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전쟁은 시작된. 전쟁의 해결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자임하게 된.

* 헨리키신저는 데이비드록펠러의 사람입니다.

 

4차 중동전쟁 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달러까지 폭등하게 된다. 400%에 이르는 엄청난 폭등이었다.


1978~79년에는 이란 호메이니가 팔레비 정권을 정복시킨 뒤, 석유생산량을 3분의 1로 급격히 줄이고, 이란-이라크 전쟁의 발발 및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무기화 천명 후, 원유가격은 39달러까지 다시 치솟게 되는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물가는 상승하면서 실업 등의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으며, 미국에서는 급작스럽게 불어난 달러를 미국 은행으로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21%까지 끌어올리게 됩니다. 이 결과 미국에 잔뜩 외채를 끌어다 국내의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던 멕시코나 한국 등은 졸지에 빚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맞았고 경제가 크게 휘청거리게 됩니다.

 

미국은 OPEC을 포함한 산유국들에게 석유 거래를 달러로 강제하면서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이어간. 석유 가격을 폭등시켜서 산유국들의 막대한 무역흑자를 미국 은행에 달러로 쌓아두게 하여, 미 월가(wall street)는 이 달러를 가지고 신흥국 등에 투자를 함으로써 자본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페트로달러 체제에서는 달러의 수요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미국이 달러의 공급량을 늘려도 달러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았다. 이미 100달러가 발행된 상황에서 미국이 이전보다 100달러를 더 발행했다면, 일반적으로 달러로 표시되는 상품의 가격은 올라야 정상이다. 달러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석유를 구매하기 위해 이 100달러를 매입하면서 추가로 발행된 100달러로 이전에 사던 것과 동일한 물량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의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 이전에 1달러로 사과 한 개를 살 수 었다면, 달러가 두 배로 늘어났다면 1달러로 사과 반 개만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석유 구매에 따른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서 달러 공급량이 두 배로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1달러로 사과 1개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달러의 구매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전과 같은 수준에서 유지된 것이다. 달러의 구매력이 유지되었다는 것은 늘어난 달러로 이전과 동일한 물량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FRB에서 달러를 막 찍어내도 그렇게 발행한 모든 달러가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수분이 따로 없다.


또한 이것은 로스차일드가 1700년대 초반부터 유지하던 금기반의 금본위제가 록펠러 주도의 원유기반의 페트로달러로 전환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로의 권력의 이동이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 페트로달러의 위기와 미국의 방어


미국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라크 사담 후세인(좌)와 리비아 카다피(우)는 공통적으로 페트로달러체제에 저항하였다.


2000년 11월 이라크는 석유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만 판매하기 시작한다. 사담 후세인이 석유대금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고, 2002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장기적으로는 달러와 유로를 결제수단으로 하는 이원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급기야 사우디 왕자 '무하메드 빈-투르키 빈-압달라 빈 압-알-라만'(Muhammad Bin-Turki Bin-Abdallah Bin-Abd-al-Rahman)은 "이스라엘의 재정적 정치적 지원자인 미국을 벌주기 위해서는 이라크가 한 것처럼 석유거래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꿀 필요"가 있으며 "아랍국가들은 외환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미국은 이라크 침공으로 여기에 대답한다. 더 이상 페트로달러의 붕괴를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이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곧바로 이라크의 석유 판매를 유로에서 달러로 되돌린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경제블록을 조직해 달러 대신 금으로 뒷받침된 디나르(Dinar)라는 통화를 사용하려는 중에 있었다. 다시 미국은 카다피를 암살하고 이런 계획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란 또한 원유결제를 달러로 받지 않겠다 선언한다. 페트로달러를 떠나는 이란을 막기위해 미국 정부와 대중매체는 이란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을 부각시켰고, 이란을 제지하려는 국제적인 군사 원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또한 이란의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제재안을 만든다.

시리아는 이란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가로 상호 방위조약으로 묶여있다. 그러나 미국은 시리아 반군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하려고 할 때마다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로 실패하고만다.

이 침략의 동기는 분명한데 미국을 조종하는 사람들(서방금융세력-특히 데이비드록펠러계)은 몇몇 국가들이 석유를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판매하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으로 다른 국가들도 그 뒤를 따르게 되고 달러는 곧 붕괴될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역거래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달러의 가치는 폭락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도 그렇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잔인한 군대를 이용해 반항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을 부숴뜨리기로 결심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과 시리아를 공격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중동 지역에서 달러에 독립해서 석유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유일한 국가가 이란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이 붕괴되면, 전쟁 없이는 달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었고 이란은 그동안 미국의 경제봉쇄를 잘 버텨왔다.


● 페트로달러의 종말, 끝이 보이는 달러 패권.


중국 상하이 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2014.05.20~21


2014년 5월 20~21일 중국에서 푸틴과 시진핑이 만나 세계최대 자원수출국인 러시아와 세계최대 자원소비국인 중국 사이에 역사적인 자원동맹이 이뤄진다. 그것은 '페트로달러'라는 말로 표현되는 현재의 세계경제질서에 대변동을 부른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지난 5월 21일 상하이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8년부터 30년 동안 중국에 연간 380억 ㎥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게 된다. 이는 중국 연간 가스 소비량의 23%, 가스프롬 연간 수출량의 16%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전체 계약 규모는 4000억달러(한화 약 4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번 합의가 미국에 잠재적 문제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교역에서 달러를 점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20일 상하이에서 고위급 회담 동안 서명된 포괄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협력의 새로운 단계에 대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상호 교역에서 자신들의 통화 사용량을 늘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양측은 특히 교역, 투자와 대출 서비스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자국 통화들의 직접 지불을 늘리는 것을 포함하여 금융 부분에서 긴밀한 협력을 확립하기 위해, 러시아-중국의 실질적 협력의 수준과 확대를 늘릴 새로운 단계들을 취하려고 한다"고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성명은 말하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일 방중에 앞서 가진 중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의 협력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면서 "이 협력을 양국의 유구한 교류역사 속에서 최고의 협력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뒤이어 유럽국가들도 중동과의 석유결제시 달러결제를 중지하고 나아가 무역결제시에도 달러결제를 중지한다고 발표한다. 달러는 전세계가 꼭 사용하여야하는 기축통화였기때문에 마음대로 찍어쓸 수 있는 지구상 최대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이제 그 기반이 붕괴된것이다.


● 설상가상, 국제 상거래에서의 달러의 폐기.


브라질 상인이 한국 물건을 구입할 때 양자를 매개하는 건 달러다. 석유와 커피, 철강, 비행기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자재와 제품들은 달러를 거쳐 주인이 바뀐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상업은행과 중앙은행, 다국적기업, 각국정부들은 미 달러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는 1944년 전 세계 금융인들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브레턴우즈 시스템상 각 경제주체들은 미국 은행 시스템에 달러 표시 자산을 보관하거나 미 국채를 보유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국제적 거래와 결제, 청산을 위해서다.

각국 은행들은 대개 JP모간이나 씨티뱅크 등 미국 대형은행에 '환거래계좌'(correspondent acount)를 개설해야 한다. 환거래계좌란 은행을 위한 계좌다.

싱가포르의 한 은행에 펀드계좌를 갖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달러계좌는 뉴욕멜론은행에 개설되는 식이다. 호주에서 은행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달러를 송금할 경우, 미국 은행에 개설된 호주은행의 환거래계좌에서 미국 은행에 개설된 남아공은행의 환거래계좌로 달러가 이동하게 된다. 즉 거래 자체는 미국 금융시스템 내에서 움직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투자대상이 미 국채인 이유이며, 이에 따라 미 국채는 가장 유동성이 큰 현금대용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외국은행들은 미국 정부의 횡포적 조치에 꼼짝할 수 없게 된다. 미 정부의 조치를 따르지 않는 외국계은행들은 미 금융시스템에서 축출되기 때문이다.

미 금융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면 외국 은행은 미 달러를 거래할 수 없다. 글로벌 업무를 아예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해당은행에겐 사형선고다. 미 정부는 이같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지배적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 진보가 이같은 상황을 뒤집고 있다.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다.

두 달 전 캐나다 금융회사가 기관으로선 처음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독일의 한 은행과 거래하는 데 성공했다. 또 24일엔 일본 15개 은행 연합이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리플(Ripple)'의 디지털 화폐 'XRP'를 사용해 상호 거래하겠다고 합의했다. 또 다른 10여개 일본 은행들이 올해 내로 블록체인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이튿날엔 대박이 터졌다. 글로벌 대형은행 4곳이 블록체인 기술에 합류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와 스위스 UBS, 스페인 산탄데르, 미국 뉴욕멜론 은행이다.

소버린맨은 "미 금융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다면 외국은행들이 미국 내 은행에 환거래계좌를 개설해 수조달러의 자금을 묶어 둘 이유가 없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되면 미국 금융시스템을 빠져나오는 막대한 자금들로 거대한 공백상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버린맨은 또 "미국 은행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미국 정부도 찍어내는 대로 팔리던 국채를 살 투자자들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블록체인은 게임의 법칙을 바꾸게 될 것이며 현행 국제금융시스템에 막대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 변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있으며,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적용한 뒤 수지타산을 맞추는 데엔 18개월이면 충분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이 지배하던 국제금융시스템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후 상황은 아랫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DollarnGold/KomE/5536



달러단독기축통화는 끝이났고 SDR이 달러를 대신하여 기축통화가 될것이고 SDR은 금을 기반으로(금본위제) 할것이며, SDR바스켓에 포함되어 있는 6개국 통화(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간 지분율에 대한 암투를 벌이고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각국이 금을 최대한 매입한 이유이기도 하겠고요.


역사적으로 로스차일드와 데이비드록펠러의 대립구도에서 보면 로스차일드가 쥐고 있던 금본위제 파운드화에서 데이비드록펠러는 원유기반의 달러화로 금권을 가져왔고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이동) 다시 원유기반의 달러패권이 쇠퇴하고 금본위제로 돌아가는것은 데이비드록펠러에게는 가장 큰 타격이겠습니다. 그리고 록펠러가문은 데이비드록펠러와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은 제이록펠러 대립하는 상황에서(데이비드록펠러 vs 제이록펠러+로스차일드) 제이록펠러의 사람인 오바마가 다극화(금본위 다극통화)를 유도하는것도 로스차일드와 데이비드록펠러의 대립구도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대사는 금권을 차지하기 위한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서방금융세력들은 금리인상과 QE, 그리고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공황의 시점을 조정하고 리셋하고 또 다른 전리품을 획득할 최선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시 가장 안전한 선택은 금인것 같습니다.




아래출처의 내용을 편집한 글입니다.

http://www.greenreview.co.kr/archive/77JacquesPauwells.htm

http://blog.naver.com/2bfair/70188567871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economy&no=121459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810904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0804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21cghkdwlsdl&logNo=220309527041




출처 :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글쓴이 : 민방위훈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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